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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칼럼] 바람을 맞아서 운수좋은 날의 이야기

[인문학칼럼] 바람을 맞아서 운수좋은 날의 이야기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0.01.1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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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살면서 약속이 어그러져 허탕을 치는 바람맞는 일들이 무슨 대수겠는가 마는,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내 하루는 바람맞는 날, 그것도 바람을 맞아서 좋은 운수좋은 날로 정해져 있었다는 생각이다.

자세한 신상을 밝힐 순 없지만, 멀리서 약사여래의 깊은 인연으로 오시는 귀인의 전화를 받고, 낌새가 불길하여 모시고 오는 청풍선생에게 별도로 전화를 하여, 오시는 길 서두르지 말고 안전하게 운전하여 오시라고 당부까지 했었는데, 집에서 발을 헛디뎌 삐끗해버린 연유로 부득이 다음날을 기약해야겠다는 귀인의 전화를 받고, 아쉽지만 그것이 더 다행한 일이라는 위로와 안도의 인사를 드렸다.

진실한 마음을 다한 진심으로 오시는 분이고, 나 또한 진심을 다해 모셔야 할 귀한 인연으로 오시는 귀인이기에, 오후에 도착하는 때에 맞추어 점심을 산양 치즈를 연구하신 김상철 선생이 운영하는 구례군청 앞 “상남 치즈”로 모시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인연으로 오시는 분의 약속이 어그러진 건 서운하지만, 집에서 발목을 삐끗한 작은 사고가 마치 큰 사고를 막는 액땜을 한 것처럼, 바람맞은 것이 반갑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오전에 어떤 사람에게 내가 평생을 연구한 세상을 구하고 사람을 살리는 약사여래의 자료를 전해주기 위해서,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로 서둘러 나가다, 정확히는 헛디뎌 넘어진 것이 아니고 걷는 발이 꼬여 넘어진 것으로, 한마디로 내 발에 내가 걸려 넘어진 바람에, 버스를 타고 강을 돌아가서 바람맞는 것을 면한 일이다.

21년 전 불행한 전복사고를 당하고 퇴원하여 재활훈련 겸 걷는 연습을 할 때 몇 번 넘어진 이후,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청류동 골짜기를 천여 번을 오르고, 전설로만 전하는 혜철국사가 전한 삼한통합의 역사 무설지설 무법지법을 찾아서, 동리산 태안사 골짜기를 뒤지고, 그리고 오산의 약사여래를 찾아서, 현무산 옥룡사를 찾아서, 천왕봉 아래 있다는 황룡사의 역사를 찾아서 헤맬 때도, 내가 내 발에 걸려 넘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비록 조그만 상처하나 없는 그냥 넘어진 것이지만, 지난 5년 동안 날마다 걷는 마당에서 내가 내 발에 걸려 넘어지고 보니, 헛웃음이 났다.

일어나 투덜거리며 나가려다 문득 스치는 불길한 느낌이 있어, 만나기로 약속한 이에게 전화를 하여, 지금 출발하는데 가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겨서 다음에 보자 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오기로 한 귀인은 발을 헛디뎌 오지 못하고, 나는 내 발에 내가 걸려서 넘어진 연유로, 섬진강을 돌아가서 바람을 맞는 헛수고를 덜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귀인은 천리 밖에서 넘어지고, 나는 내 집 마당에서 넘어져 바람을 맞은 일이, 아무리 생각해도 우연이라고만 하기엔, 기이하고 기이한 일이었다.

아무리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무쌍한 연유로 예측이 불가한 일이라고 하지만, 약속이 어그러져 허탕을 치는, 바람을 맞는 일이 기분 좋을 사람은 없고, 나 역시 비록 새옹지마로 이해는 하지만, 오늘 두 사람과 두 번의 약속이 어그러지고, 내가 무탈하게 하루를 보낸 이유가, 공교롭게도 두 사람 다 오산 약사여래와 깊은 관련이 있고 발을 헛디딘 사고가 같다보니, 기이한 일이라는 것이다.

끝으로 게재한 사진은 하얀 쥐의 해인 경자년(庚子年)의 첫날 지난 1월 1일 오전 11시 7분, 창문 밖 신령한 국사봉(國師峯) 잿빛 구름위로 나타난 상서로운 흰쥐다.

새해 첫날 구름이 국사봉 하늘에 내보인 상서로운 흰쥐를 보면서, 나와 내 주변에 좋은 일들이 있을 것으로 예감을 했었는데, 비록 약속이 어그러져 허탕을 치는 바람에 점심 한 끼를 굶기는 했어도, 천리 밖의 귀인과 내가 발을 헛디딘 작은 사고로 큰 액땜을 한 오늘이야말로, 더 좋은 날의 약속을 위해서 약사여래가 살핀 것으로, 운수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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