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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돌아오는 안철수가 깨달아야 할 것은 먼저 죽는 일이다.

[섬진강칼럼] 돌아오는 안철수가 깨달아야 할 것은 먼저 죽는 일이다.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0.01.03 08:06
  • 수정 2020.01.03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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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을 우습게보고 있는 안철수를 보거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인맥들을 보면,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 그것이 안철수의 비극

사진설명 : 하늘이 섬진강 비룡대 하늘마당의 구름으로 보이는 뜻이 무엇일까? 안철수의 수호신일까. 저승사자일까. 모를 일이다.
사진설명 : 하늘이 섬진강 비룡대 하늘마당의 구름으로 보이는 뜻이 무엇일까? 안철수의 수호신일까. 저승사자일까. 모를 일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뉴스 같은 뉴스가 없는 요즈음, 안철수가 돌아와서 정치를 재개한다는, 뉴스도 못되는 뉴스로 종일 시끄러운데, 뉴스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썩어빠진 한국의 3류 정치판과, 사람에게 충성하고 미치며 광분하는 저급한 노비들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민들의 정치 수준을 보면, 안철수가 그런 꿈을 꿀만도 하다는 것이다.

촌부의 말인즉슨, 그것이 옳든 그르던, 어떤 사람이 어떤 꿈을 꾸든 아무도 판단할 수 없고 간섭할 수 없는 그 사람의 자유이니 할 말은 없지만, 정계 복귀 정치 재개를 선언한 안철수를 보면, 여전히 자신의 꿈에서 깨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비유를 하면, 마치 자신을 우매한 국민들을 깨우치는 시대의 스승이며, 절대 선으로 착각하고 있는 조국 교수와 지향하는 목표는 다르지만, 안철수 역시 자신을 우매한 국민들이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민생을 구원할 성인(聖人)이며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절대 희망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촌부만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꿈을 꾸는 건 좋은 일이지만, 매번 정치적 고비마다 안철수가 보여줬고, 그리고 다시 신년 정초 뉴스거리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안철수의 정치 재개 명분과 타이밍이다.

감히 단언컨대, 최소한 안철수 주변에는 상황에 따라서 지혜롭게 대처하는 조언을 해주거나, 또는 안철수가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정치인 안철수 주변에서 음으로 양으로 도우며 안철수를 정치 지도자로 만들려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둔하고 어리석은 부류들이라는 것, 아니면 한 나라의 정치 지도자가 되고 싶은 안철수를, 민심과 시대에 부응하며 앞서가는 지도자가 아닌, 저잣거리 방앗간에서 웃어대는 가십거리로 만들어, 즉 자신들이 먹고사는 도구로 만들어서 살아가는 사악한 부류들이라는 것이 촌부의 판단이다.

생각해 보라, 하다못해 상갓집 개도 눈치를 볼 줄 알아서, 짖어야 할 때와 꼬리를 흔들 때를 알고, 싸구려 장마당 각설이들도 등장하는 때를 기획하고 꾸미는데, 매번 안철수가 정치판이라는 무대에 등장하고 철수하는 모습을 보면, 상갓집 개보다도 못한 것으로, 철학도 없고 명분도 없을뿐더러, 타이밍마저 조롱거리가 돼버렸기에 하는 말이다.

안철수가 입국하여 무엇을 보여줄지 알 수는 없지만, 정치 재개를 선언을 한 안철수를 보면, 국민들을 감동시키는 그 어떤 한마디 메시지도 없고, 심지어는 스스로 자신을 꾸미는 화장조차도 하지 않은 안철수를 보면, 경자년 봄날의 총선에서 민심을 얻는데 실패하고, 비참하게 사라진다는 것이 촌부의 판단이다.

촌부가 뭘 알까마는 “돌아와서 정치를 어떻게 바꿀지 상의 하겠다.”는 안철수의 속내와 행보를 짐작해보면, 애석하게도 그동안 어떻게 하면 국민들의 희망이 되고, 시대에 부응할지에 대하여, 고민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예나 지금이나 천하의 정치는 하늘의 뜻을 받들며, 민심의 바람에 순응하여 나가는 것인데, 그런 기본적인 철학과 상식에서 보면, 안철수는 경자년 봄날 흐르는 강물을(민심) 따라서 화전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고, 들이든 산이든 도시든 자신의 생각대로 새로운 강을 만들어서, 강물을 끌고 가겠다는 것으로, 이는 여전히 국민들을 계도해야 할 우매한 집단으로 보는 오만하고 어리석은 망상에 빠져있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만약 설날 전 입국하여 설을 쇤다는 안철수가 오만과 어리석음의 망상을 깨고, 경자년(庚子年) 납음(納音)인 벽상토(壁上土) 그대로, 내로남불의 위선과 오직 패거리들만을 위한 가혹한 정치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들이 기대고 쉴 튼튼한 바람막이 벽이 되어주고, 서리와 눈보라를 피할 들보와 서까래를 덮는 상서로운 기운을 뿜어내는 찰진 황토가 된다면, 봄날의 민심은 안철수에 감사하며 대권으로 가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가 어리석은 꿈을 깨지 못한다면, 그의 존재는 한낱 유행이 지난 낡은 찻집 들보를 지나가는 양상군자(梁上君子 본래는 대들보 위의 도둑을 이르는 말이지만, 후대에 쥐를 뜻하기도 함)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고, 경자년 납음으로 풀면 식은 찻잔에 떨어지는 서까래의 부스러기 흙이 되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부연하면, 자신들의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서 온갖 노망을 부리고 있는 늙은 손학규 하나를 어쩌지도 못하고 휘둘리고 있는 당사자들이 무슨 정치를 바꾸겠다고 하는 것인지, 이런 코미디가 없다.

안철수가 국민들이 자신에게 몰아준 열망과 기대를, 먹다버린 뼈다귀를 개에게 던져주듯, 닳아서 헤진 구두 뒤축을 흔들며 세상을 속인 사악한 박원순에게 던져 줘버린 것을 시작으로, 자신을 지지해 주는 국민들을 배반한 것이 벌써 몇 번째인가?

그 결과 이미 간철수가 닉네임이 돼버렸고, 양치기 소년이 된지 오래인 안철수가 “정치를 바꾸겠다.”며 돌아오고 있는 이 웃지도 못할 일을 어찌 생각해야 할까?

우리 같은 촌부들의 조언이 귀에 들리지도 않겠지만, 진실로 안철수가 정치를 바꾸려 한다면 완벽하게 죽는 법을 먼저 배우고 실천하기를 권한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뛰어들어 완벽하게 죽었듯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서 최악의 부정부패와 가혹한 학정에 시달리며, 소용돌이치고 있는 민심의 바다에 뛰어들어, 완벽하게 죽기를 권한다.

완벽한 부활과 환생은 완벽한 죽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에, 다시 민생들의 희망으로 부활을 꿈꾸며 돌아오는 안철수에게 민생의 바다에서 완벽하게 죽기를 권하는 것이다.

만일 안철수가 촌부의 뜻을 이해하고 진심을 다하여 실천한다면, 심청이가 환생했듯이 민심 속에서 환생할 것인데, 아직도 국민들을 우습게보고 있는 안철수를 보거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인맥들을 보면,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 그것이 안철수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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