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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겨울비에 젖고 있는 봉산을 바라보면서

[섬진강칼럼]겨울비에 젖고 있는 봉산을 바라보면서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19.12.3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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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겨울비에 젖고 있는 봉산과 내가 봉산에게 전해주는 붉은 장미꽃이다.
사진설명 : 겨울비에 젖고 있는 봉산과 내가 봉산에게 전해주는 붉은 장미꽃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오후에 멀리서 찾아온 귀인들이 떠나고 난 뒤, 갑자기 일이 생겨 4시 25분 섬진강을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구례읍에 나갔다가,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에 젖고 있는 봉산(鳳山)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겨울비에 젖고 있는 봉산의 모습은, 마치 간밤 메울 수 없는 하늘 절망의 공간에서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 나를 위로하는 것처럼, 천년을 돌아와 만나고 있는 봉산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터미널에서 6시 10분 출발하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눈앞에 빤히 보이는 봉산은 날개가 퇴화하여 날지를 못하는 새 한 마리가 옴짝달싹 못하고, 한겨울에 내리는 차가운 비를 온몸으로 맞고 있는 것 같은 꼭 그런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터미널에서 청승을 떨고 있는 초라한 내 모습이 싫어서, 빗속에서 신호등을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고, 이따금 굽어지고 꺾이며 다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봉산이 있는 산정마을 앞까지 걷고 보니, 그 길이 눈앞에 서서 바라만 보던 봉산과 나 사이에 가로놓인 절망의 공간을 지나는 길이었다.

오랜 세월을 기다리면서 퇴색되고 무뎌져버린 감정과 의식을 깨우고, 구겨져버린 시간을 펴서 보니, 천년을 돌아와 만나는 봉산과 나의 사이 영원히 다가설 수 없는 거리는 사라져 하나의 점이 되고, 나를 절망하게 하였던 공간은 봉산의 봉황이 다시 날아오르는 꿈을 꾸는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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