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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정일보/서인석의 시시콜콜] 내 나이와 비슷한 라면의 나이?

[서울시정일보/서인석의 시시콜콜] 내 나이와 비슷한 라면의 나이?

  • 기자명 서인석 논설위원
  • 입력 2019.12.06 10:39
  • 수정 2019.12.0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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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먹지말아야 할 라면이 있다?

서울시정일보 칼럼/서인석의 시시콜콜]
[내 나이와 비슷한 라면의 나이?]

난 라면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스프를 넣고 봉지 째 마구 부셔먹던 시절부터, 집에서 라면을 끓일 때 국수를 넣어서 끓어먹었던 시절~얼마나 짜던지 국수라면을 먹은 날은 물을 한주전자정도 마셨다. 학창시절에는 라면 열개를 넣고 한꺼번에 끓여서 친구랑 둘이서 다 먹은 적도 있었다. 군 훈련소에서는 배가 고파서 일부러 라면을 불린 다음에 먹었다.

지금도 라면을 좋아하지만, 내 담당 주치의가 건강을 위해서 이제부터는 라면을 멀리하라~그래서, 라면을 먹을 때는 식탁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고 먹는다. 흐흐흐~~

당신은 일 년 에 라면을 몇 개나 드시는가? 안 세어봐서 모른다고? 걱정 마시라~ 그런거 다 계산 해 주는 데가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 국민들은 1인당 평균 74.1개의 라면을 먹었다는 조사결과다.

라면을 최초로 개발한 나라는 일본으로 1958년경부터 생산했다. 라면의 유래는 중국의 건면에서 나왔다는 설과 안도[安藤]라는 일본 사람이 오뎅 튀김을 보고 착안하게 되었다는 2가지 설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라면
우리나라 최초의라면
일본 라면
일본 라면

 

라면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건 1963년도 이다. 삼양라면의 전 회장은 어느 날 점심시간에 남대문 시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어 시장을 둘러보는데 시장 모퉁이에서 5원짜리 꿀꿀이죽을 사서 먹으려고 줄을 서 있는 것을 본 전 회장은 일본에서 먹어본 라면이라는 영감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1960년대 초반 절대 빈곤으로 인한 우리의 식량부족 현상을 타개하고자 1963년 9월 삼양식품이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도입, 치킨탕면을 선보이면서 시작되었다.

'라면의 아버지' 故전중윤 회장
'라면의 아버지' 故전중윤 회장

 

나 어릴 적 십행시를 가지고 라면을 노래하기도 했는데 가물거리는 기억을 붙잡아 써보자.

일. 일본에서 들여온 맛있는 라면
이. 이 라면이 바로
삼. 삼양라면 이라네
사. 사용방법은 간단해
오. 오분동안 물을 끓이고
육. 육그램짜리 스프를 넣고
칠. 칠칠하게 끓여드세요
팔. 팔팔 끓이면 불어터져요
구. 구수한 맛이 닭고기 맛이죠?
십. 십원짜리 한장이면 됩니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부르던 노래가사다. 이 노래는 누가 만들었을까? 삼양라면회사에서 만들어서 퍼트리지 않았을까? ‘서동요’를 만들어 선화공주를 꼬드긴 백제 무왕의 전략처럼? 흐흐흐 당시무왕은 마를 파는 사람이었는데 선화공주를 본 순간 뿅~가서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주며 서동요를 부르게 했다지? 지금으로 따지면 19금 노래를? (선화 공주가 맛둥과 밤중에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눈다는 내용)

라면 회사도 그랬다. 라면 부스러기를 아이들 과자로 만들어 전국의 아이들 입맛부터 사로잡았으니까....그게 ‘자야’ 였지? 흐흐흐~

라면과자'자야'
라면과자'자야'

 

아뭏튼 놀거리가 없었던 그 시절 우리는 진또리, 오징어가이, 다방구, 어찌니쌈, 묵지빠....등 일본 잔재의 놀이와 함께 라면마저 노래로 만들어 찬양? 했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구봉서·곽규석 코미디언 콤비가 “형님 먼저 아우먼저”라며 선전을 하고, 탈렌트 한진희는 ‘파송송 계란 탁’ 이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었다.

구봉서와 곽규석
구봉서와 곽규석

 

일본에서 꿀꿀이죽 대용으로 들여온 라면은, 이제 세계시장에서 우리 라면이 최고다. 라면 가격의 역사를 살펴보자. 1963년 9월 한국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 10원으로 판매 시작한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노래에도 십원짜리 한 장이 라면 가격이다. 1962년 9월 21발행해서 1973년 10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십원짜리 종이돈은 사라지게 된다. 그 당시에 이런 노래도 있었다. ‘타잔이 십원짜리 빤쓰를 입고 아아아~~’ 그 당시 빤수?가 십원이였나보다.

아뭏튼 라면은 1970년 20원 7년만에 소맥분과 우지가격 인상으로 20원으로 인상으로, 1978년 환율변동과 원료의 가격 인상으로 50원으로 인상, 1981년 8월 라면이 판매 된지 30년이 다 됐지만 라면가격은 국민친구 100원 이었다. 1990년 11월 우지사건으로 라면생산 중단될 때 까지도 우리의 친구~라면은 여전히 100원을 고수했다. 그러나 1994년 1월 녹황색 야채스프와 SOD가 첨가된 삼양라면 재출시. 원료의 고급화 가격 300원으로 오르고, 1998년 2월 환율폭등 으로 인한 원부자재 인상으로 450원으로 가격인상되고, 2001년 7월 원부자재 가격 인상.으로480원으로 가격인상이 된다. 그리고 지금은 ‘신라면블랙’이 1,200원 정도 한다.

우린 앞으로 어떤 라면을 먹어야할까? 어떤 라면이 가장 맛이 없을까? 또한 어떤 라면이 가장 맛이 있을까? 그건 각자의 취향대로 다 틀리겠지만, 인생의 라면은 정해져있다.

인생에서 가장 맛없는 라면은 '했더라면' 이다. 그 이름 하여 ‘후회라면 !!!’ 그때 그 일을 했더라면...그때 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과거에 대한 미련과 후회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말자. 새로운 라면을 끓여보자~!!! '후회라면~!!!'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라면을 끓이지 말고 '이제부터라면 !!!! '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생의 라면을 시작해보자!!!

‘자! 이제부터라면 ~!!!’

[서울시정일보,미디어한국/논설위원 서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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