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칼럼] 황진이가 바라본 반달의 의미에 대하여
[섬진강칼럼] 황진이가 바라본 반달의 의미에 대하여
  • 박혜범 논설위원 <hmk0697@hanmail.net>
  • 승인 2019.11.30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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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7일 칠월칠석날 18시 26분 비룡대(飛龍臺) 뜰에서 촬영한 반달이다.
지난 8월 7일 칠월칠석날 18시 26분 비룡대(飛龍臺) 뜰에서 촬영한 반달이다.

 

[서울시정일보] 옛 사람 황진이의 시 한 편을 해석하여 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고, 당대에 조선팔도를 호령하던 뭇 사내들의 마음을 흔들어버렸던, 그녀가 남긴 주옥같은 시들을 다시 읽어보는데, 문득 드는 생각은 그 옛날 450년 전 황진이 그녀가 살았던 케케묵은 16세기의 세월이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문명한 21세기의 세월이나, 동짓달 하루해는 짧고 밤은 징그럽게 길기만 하다는 것이다.

옛날의 황진이나 지금의 나나, 동짓달 기나긴 밤을 잠 못 들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 또한 다르지 않고, 달이 뜨는 밤이면 달빛 하늘에 보이는 그리운 이에게, 보내지 못하는 길고 긴 연서를 쓰고, 선잠을 깨어 잠 못 드는 밤이면, 꿈속에서 만났던 이를 생각하며, 밤을 새버리는 버릇까지 꼭 닮았다.

그런데 한 가지 드는 의문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잠 못 들며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동짓달 길고 긴 밤은 같은데, 황진이와 나 둘 가운데 누구의 마음이 더 절절하고 또는 아프고 또는 심란하냐는 것이다.

아무 때나 기차를 타든 버스를 타든, 천리 길을 한나절에 가고, 언제 어디에 있든지 전화 한 통으로 궁금한 소식들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볼 수 있고 알 수가 있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의 내 마음과, 걸어서 산을 넘고 나룻배로 강을 건너던, 그 옛날 16세기 조선시대를 살던 황진이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비교가 안 된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동짓달 잠 못 드는 밤, 사랑하는 이를 그리는 애타는 마음을 저울에 달 수 있다면, 황진이의 마음이 열 배는 더 무거울 것이고,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며 가슴에 이는 뜨거운 불길 또한 황진이가 훨씬 더 뜨거웠을 거라는 생각이다.

생각해보라. 좋은 날 다시 온다는 약속은 했지만, 한 번 이별하고 나면 강은 잘 건넜는지, 산굽이 돌아갈 때 별일은 없었는지, 달이 뜨는 밤이면 자신이 달을 보며 임을 생각하듯, 임도 달을 보며 자기를 생각하는지, 혹 취중의 꿈속이라도 자신을 찾아오는 꿈을 몇 번이나 꾸었는지, 또는 간밤 꿈속에서 임 계신 곳을 찾아갔다가, 집 앞에서만 서성이다 돌아왔다는 등, 애타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가 없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 볼 수가 없었던, 그런 세월 속에서 사랑을 했던 황진이의 마음이 어떠했을 지를........

다음은 지인이 어느 때 지었는지 해석을 부탁한 황진이의 시 “반달”에서 황진이가 반달을 바라본 날짜와 시간을 특정해 본 것이다.

영반월(詠半月) 반달
수단곤산옥(誰斷崑山玉) 누가 곤륜산의 옥을 잘라
재성직녀소(裁成織女梳) 직녀의 빗을 만들어 주었던고.
견우일거후(牽牛一去後) 견우가 떠나 가버린 뒤
수척벽공허(愁擲碧空虛) 시름하다 푸른 하늘 허공에 던져버린 것이라오.

지인이 궁금해 하는 시의 배경이 된 황진이가 반달을 본 날짜와 시간 그리고 황진이의 상황을 유추하여 본다면, 작가인 황진이 특유의 시상(詩想)을 바탕으로, 시문에 나타난 역사와 문화인 곤륜산과, 남녀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견우와 직녀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자연 현상인 벽공(碧空)의 푸른 하늘을 풀어보면, 대충이라도 년도를 추측해 알 수는 없지만, 16세기 1500년대 중반 어느 해 7월 8일 그러니까 칠월칠석 다음 날 여드레 해질 무렵이라고 특정 할 수가 있다.

칠석 다음날 기녀들과 나들이를 갔다 돌아오는 해질 무렵, 또는 저녁 무렵 기녀들과 기방 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한담을 하다, 누군가 때마침 푸른 하늘 허공에 드러난 백옥 같은 하얀 반달을 보고 아름답다며 감탄을 하자, 황진이가 저거 어제 밤 다녀간 견우가 주고 간 빗을 성질머리 더런 직녀가 던져버린 것이라며, 한바탕 웃는 모습임을 그려 볼 수가 있다.

이 시에서 말하는 벽공(碧空)과 반달의 빗은, 하루해가 막 저물어 간 뒤, 하늘빛이 푸른 옥처럼 더욱 짙어지고 돋보이는 잠깐 사이 어스름 땅거미가 지는 무렵, 푸른 하늘에 그 모습을 드러낸 백옥 같은 하얀 반달이 또렷이 보이는 자연의 현상이므로, 황진이가 반달을 본 시간은 계절에 상관없이 어스름 땅거미 지는 때이며, 날짜는 초여드레(8일) 전이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시의 배경이 은하수 오작교에서 한 번 만나 이별한 견우를 직녀가 그리는 상황이고, 초승달이 반달이 된 것이므로, 떠나간 견우를 그리는 직녀와 푸른 하늘 허공에 뜬 반달이 일치하는 날짜가 칠석 다음날인 8일 해가 저물고 어두워지기 전 오후 7시 무렵으로 보면 정확하다.(삼경 오밤중에 뜨는 그믐으로 기울어가는 하현달은 절대 아니다.)

일반적으로 칠월칠석이 든 양력 8월이 우기(雨期)가 끝나고, 맑고 푸른 가을이 시작되는 입추(立秋)가 있음을 알고, 앞에서 언급했던 시의 배경이 된 곤륜산의 옥(玉)과 견우와 직녀 그리고 푸른 하늘에 뜬 반달을 황진이의 시심으로 보면, 칠석 다음날 어스름 땅거미 지는 시간임을 알 수가 있다.

이 밖에 전체적으로 이 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것, 특히 직녀가 옥으로 만든 빗을, 푸른 하늘 허공에 던져버렸다는 황진이의 마음에 대하여, 사람들마다 느끼는 감상이 다를 것이고 다른 것이 정상이며, 그 다름에 대하여 옳다 그르다 논하는 것 자체가, 시의 감흥을 모르는 무지이니, 시를 읽는 이들 각자가 그런 상황임을 인식하고, 황진이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이, 가장 좋은 해석이며 감상일 것이다.

개인적인 감상은, 마지막 구절인 “수척벽공허(愁擲碧空虛)”을, 직녀가 사랑하는 이와 이별 후 시름하며 푸른 하늘 허공에 던져둔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슬퍼하던 직녀가 푸른 하늘 허공에 휙 던져버린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 재밌는 현상들을 추측해 볼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빗을 시름하다 허공에 던져둔 것이라 한다면, 극한 사랑의 이별 후에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황진이가 쓴 것이고, 허공에 휙 던져버린 것이라 한다면, 사랑하는 임과 나누었던 뜨거운 욕정을 잊지 못하는 여인, 황진이가 한 번 다녀간 뒤 오지 않는 사내에게 복수하는 글로 보면 딱 맞아 떨어진다.

한마디로 네까짓 놈이 감히 나를 하면서, 그가 주고 간 고급 브랜드 선물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상황으로 이해하면, 황진이의 불같은 사랑과 성깔이 함께 보일 것이다.

끝으로 여자로 태어나 사는 것 자체가 형벌이었던 조선시대, 지극히 평범하고 흔한 일상을 주옥같은 시어(詩語)로 읊어낸 천부적인 시심(詩心)을 가진 시인이며, 명기(名技)였던 황진이의 심리를 자연주의를 바탕으로 분석해 보면, 그녀의 일생은 끊임없는 사랑과 절망과 그리움의 반복이었고, 그렇게 살다간 사랑의 화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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