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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사랑을 맹세하는 분홍 장미꽃을 보면서

[섬진강칼럼] 사랑을 맹세하는 분홍 장미꽃을 보면서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19.11.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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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내 쓸쓸한 뜰에 핀 분홍 장미꽃이다.
사진설명 : 내 쓸쓸한 뜰에 핀 분홍 장미꽃이다.

 

[서울시정일보]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속삭임이 사랑의 맹세라며 시를 쓰고, 또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허무한 것이 사랑의 맹세라며 빈정거리는데........ 

아무러면 어떤가, 동짓달 초이틀 해 저무는 창가에서, 초저녁 서쪽 하늘에 뜨는 초승달을 기다리다, 내 쓸쓸한 뜰에서 피어 간간이 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꽃말이 사랑의 맹세라는 한 송이 분홍 장미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되살아오는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들이, 잘못 건드려 덧나버린 상처처럼 나를 아프게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랑의 맹세라는 꽃말을 누가 지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분홍빛 전설을 따라가 보면, 햇살고운 그날 온 힘을 다해 흔들리면서, 온 몸을 한 송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우며 약속했던, 황홀하기만 하였던 분홍빛 속삭임, 그날의 기억 사랑의 맹세를 잊지 못하는 이가 지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젊은 날 이 강에서 강물에 뜨는 아름다운 달로 만났던, 첫사랑 그녀가 이 강을 떠나가고 나서,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다시는 뜨지 않는 영원히 져버린 달임을 알았을 때, 사랑의 맹세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온 몸으로 절감하면서, 끝내 기다림을 포기하고 잊어야 하는 슬픔에, 밤을 새며 강물이 넘치도록 울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렇다고 짐작하는 것이다.

지금이야 뭐 생각지 못한 생니가 돋는 것처럼, 가끔 생각나는 첫사랑의 기억이 그렇다는 것뿐, 그녀를 잊지 못하고 사는 건 아니지만, 그날 이후 지금껏 살아오는 내내, 나도 모르게 길들여진 습관처럼, 여전히 강가를 서성이며 달이 뜨기를 기다리고 있는, 늙은 나를 보면서 또 다른 내가 놀라며 산다.

생각해보면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랑의 맹세는 허무하고 그리움은 사치라며 냉소를 하지만, 거짓과 위선이 판치고, 미쳐버린 사람들의 광기가 뒤덮어버린 삭막한 세상에서, 가끔 아주 가끔은 그리워해도 죄가 되지 않는 좋은 사람 그녀가 있음에 감사하면서, 동짓달 초이틀 초승달이 뜨기를 나는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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