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정일보 박경민기자] 먼저 이 글은 지난달 30일 청년희망펀드에 가입한 ‘행복한 구두미화원’ 최창수 씨에 대한 감사의 글임을 밝힌다.
최 씨는 청년들을 위해 어렵게 번 돈을 아무 대가없이 흔쾌히 기부했다. ‘타의 모범이 되었다’라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말일 것이다.
최 씨는 또한 충분히 꺼릴만한 공개 취재에 대해서도 아무 조건없이 받아들였다. 자신에게 이익이 있을 경우에만 취재를 용인하는 얄팍한 처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최 씨는 서울 태평로 신한은행 본점 지하 1층에서 지난 33년간 구두를 닦아왔다. 일흔이 된 요즘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새벽 6시에 나와 밤 8시까지 하루 400~500켤레의 구두를 닦는다.
이처럼 매일 흙먼지를 마시고, 독한 구두약 냄새를 참아가며 힘들게 번 ‘피 같은’ 돈을 어떻게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조건없이 내놓을 수 있을까!
“왜”라는 자칫 복잡다단할 수 있는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 그게 다였다.
“대통령이나 은행장처럼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만 청년희망펀드에 가입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어렵지만 자기 자식들 일이라고 생각하고 국민 모두가 십시일반해 모으면 큰 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술 한 잔 덜 먹고, 밥 한 끼 덜 사먹는다는 마음으로 가입했습니다. 신청을 하러 갔더니 은행 여직원이 ‘사장님, ‘짱’이에요. 좋은 생각하시며 사시네요’라고 반갑게 맞으며 엄지손가락을 척 들더라고요. 그걸 보며 저도 기분이 더 좋아졌습니다.”
황해도 평산이 고향인 최씨는 6.25 전쟁 때 부모님과 함께 피란을 왔다.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아홉 살 나이부터 구두솔을 잡았다. 그 때 시작한 구두미화일은 지금까지 60년이 넘게 그의 천직이 되었다.
“배우지 못했으니, 구두라도 닦으며 살아가는 게 최선의 방책이었죠. 하루하루 구걸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늘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구두를 닦아도 웃는 얼굴로 닦아야 더 빛이 나는 법이니까요.”
‘아홉 살 인생’을 시작한 이래 그는 절대로 ‘공짜밥’을 먹지 않았다. 반면 은혜는 돌에 새기고 꼭 보답하라는 모친의 유지를 실천하고 있다. 없는 살림에 적십자비를 매번 꼬박꼬박 내는 것도 수십년전 받았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서다.
“모친께서 아프실 때 고 장기려 박사가 세운 청십자의료보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모친은 그 고마움에 임종하시면서 시신을 부산대병원에 기증하셨습니다. 당시 시신기증은 손에 꼽을 정도로 매우 드문 때였죠. 부의금도 받지 마라고 하셔서 이미 받은 부의금도 돌려줬습니다. 저희 가족이 어려웠을 때 사회의 도움을 받았으니까, 그 은혜를 반드시 갚아야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미국에서 공부하는 큰 딸이 너무 보고 싶어도 자신의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카톡’으로나마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는 최창수 씨.
그는 “청년희망펀드가 계속되는 한 매달 돈을 낼 것”이라며 “화려한 삶은 살지 못했어도 깨끗하게 부끄럼없이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실이 어렵더라도 비관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청년들에게 격려의 말을 남긴 뒤 지하1층 자신의 일터로 돌아갔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에 나오는 ‘행복한 왕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주었지만 영원히 행복한 왕자로 남았다. 스스로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신한은행 30년 구두닦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의 부자’ 최창수씨 역시 영원히 행복한 구두미화원으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