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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정일보/서인석 논설위원] 서인석의 시시콜콜...왔다리갔다리의 故 남철 남성남

[서울시정일보/서인석 논설위원] 서인석의 시시콜콜...왔다리갔다리의 故 남철 남성남

  • 기자명 서인석 논설위원
  • 입력 2019.11.19 12:53
  • 수정 2019.11.1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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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개그맨, 코미디언들은 지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서울시정일보/서인석 논설위원]

서인석의 시시콜콜

'왔다리갔다리춤'의 원조 남철,남성남 명콤비 코미디언
'왔다리갔다리춤'의 원조 남철,남성남 명콤비 코미디언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개그맨, 코미디언들은 지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요즘 필자가 부르는 노래가 꽃청춘인데 (박성훈 작곡/ 서인석/박성훈 작사) 그 노래를 부르면서 추는 춤이 ‘왔다리갔다리’ 라는 춤이다. 
이 춤의 원조는 지금은 저 하늘의 별이 되신 코미디언 남철 남성남 선배님의 춤이다.

개그맨 이용식 선배님과 함께 그 분들의 장례식장을 찾았는데, 연예인들을 비롯하여 많은 조문객들이 찾아와 그 분들을 회상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 장례식장에서 그 분들을 저 하늘로 보낸 슬픔의 얼굴보다 그 분들이 생전에 하신 코미디를 생각하며 웃는 얼굴로 조문 하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그 분들이 생전 ‘왔다리갔다리 춤’으로 국민들을 웃게 만드신 모습이 생각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아마도 그것이 코미디의 힘이요 웃음의 바이러스가 아닌가 생각된다. 나도 이 세상을 떠나면 날 생각하면서 웃는 분들이 있으면 좋겠다.

코미디계에도 명콤비들이 많았다. 그 시절 생각만 하면 다들 기억나는 이름들이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명콤비 장소팔 고춘자, TV시대가 낳은 스타 명콤비 '영원한 막둥이' 구봉서와 '비실이' 배삼룡 콤비의 개다리 춤,
한국의 체리채플린 서영춘과 백금녀 콤비의 “인천앞바다 사이다 둥실~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은 아마도 대한민국 최초의 랩이 아닐까?

홀쭉이와 뚱뚱이 콤비로는 양훈 양석천 선배님등이 계셨고 ‘왔다리갔다리 춤’의 최강 콤비 남철-남성남,
'땅딸이' 이기동 선배님의 ‘아기다리고기다리던데이트’ 와 ‘쿵다락닥삐약삐약’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외에도 합죽이' 임희춘, 또 코믹 댄스의 이상한-이상해 콤비, 그리고 미남-미녀였던 배일집-배연정 콤비가
TBC의 '고전 유모어 극장(뒷날의 KBS 유모어 극장)'을 통해 국민들의 웃음을 지켰다.

만담과 슬랩스틱으로 민초들의 배고픔을 달래주었던 1960년대와 70년대의 그 분들의 웃음바이러스는 가히 메가톤급의 코미디였다.
1970년대 최고의 코미디언은 누구일까? 아무래도 필자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가장 '웃겼던' 사람은 배삼룡과 이기동이었다.
두 사람이 콤비 플레이를 보여준 기억은 별로 없지만, 한마디로 당대 코미디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만 했다.

특히나 이기동의 '쿵다라락딱 삐약삐약, 닭다리잡고 삐약삐약'은 그 시절의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유행어였다.
한때 이기동씨는 "배삼룡씨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 대사를 못 외웠다. 하지만 그 틀리는 방향이 너무 기상천외였다.
너무 웃겨서 앞에서 연기 하는 사람이 연기를 못 할 정도로 웃겼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한 기억이 난다.

이 분들이 한창 인기를 얻던 시절, 갑자기 '삼룡 사와'라는 제품이 나타났다. 배삼룡씨가 직접 광고 모델로 나오는 CF가 방송됐다.
'사와'는 요구르트에 과즙을 배합했다는 음료였는데 삼룡식품이라는 이름으로 주 제품은 '삼룡 사와'와 '삼룡 요구르트'였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땅딸이 요구르트'라는 제품도 등장했다. 이건 당연히 이기동씨의 제품이었다.
물론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두 제품 모두 곧 시장에서 볼 수 없게 된다. 두 분 모두 사업에는 별 재능이 없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이 '삼룡 사와'나 '땅딸이 요구르트' 같은, 들으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상표명이야말로 당시 희극인들의 비극을 대변해주는 요소라고 하겠다.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코미디언을 무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지금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수입 면에서도 다른 분야의 연예인들에 비해 매우 불리한 조건이었다.
웃기는 사람을 경시하는 사회적 구조는 지금은 변했고, 유머있는 사람이 신랑감 1호로 꼽히는 시대이지만, 그 시절에는 웃기는 사람들은 그저 웃기는 사람이였을까?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개그맨, 코미디언들은 지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서울시정일보/미디어한국 논설위원 서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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