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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칼럼] 다 때려 치고 달이나 따러가자

[섬진강 칼럼] 다 때려 치고 달이나 따러가자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19.09.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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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배때기 살찐 몸통은 이미 썩어서 없는 비린내 진동하는 싸구려 조구대가리 뿐이고 씹어 먹을 것도 없고 볼품없이 찌그러진 달 뿐이지만

작품설명 : 화가 김만근의 “달을 따는 아이들”이다

[서울시정일보] 에라 십팔 오나가나 신소리들로 속상하고 심란한 세월 이도저도 다 때려 치고 달이나 따러가자.

너나 나나 죽을 둥 살 둥 쌔빠지게 일해 봤자 손에 든 건 마이너스 통장뿐이고

어찌어찌 겨우 마련한 몇 푼의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건 시장바닥에 널린 썩어빠진 싸구려 조구대가리 몇 개뿐

좆같은 세상 좆같은 놈들처럼 살지 못하고 신세 좆 돼버린 인생이지만

강남의 좌·우파 부자들이 하하 호호 즐거운 추석날 좆 돼버린 인생이라고 손가락만 빨 수는 없잖은가

궁리를 해본들 차례 상을 무엇으로 차리고
뒷산 조상님 성묘에는 뭘 싸들고 가야할지 생각하면 아득하다.

아무리 좆같은 세상 무능한 가장이라도 조상님 성묘에 달랑 조구대가리 하나만 들고 갈 수는 없잖은가

하여 푸른 장대 하나를 챙겨들고 강가에서 기다리다 강을 건너오는 달을 냅다 후려쳐 따야겠다.

한바탕 사나운 태풍이 불어가고 때 이른 추석이라
찌그러지고 별 맛도 없는 달이지만 그래도 저 달은 따야겠다.

그리하여 추석날 한나절을 쉬엄쉬엄 걸어 배곯아 죽은 우리 조상님 무덤을 찾아가서

마른 솔잎을 모아 깊은 한숨으로 향을 피우고 쏟아지는 눈물을 제주(祭酒)로 따라 올리며

비록 배때기 살찐 몸통은 이미 썩어서 없는 비린내 진동하는 싸구려 조구대가리 뿐이고 씹어 먹을 것도 없고 볼품없이 찌그러진 달 뿐이지만

무능한 후손이 죽지 못해 겨우 살아서 죽을힘을 다해 기해년 추석 제수를 마련했다 고하고

마음을 다해 정성으로 마련하였으니 기꺼이 흠향하시라며 엎드려 인사나 드려야겠다.

추신 : 이런들 저런들 이미 엎어진 물이고 기울어진 달입니다.
바라건대 속상한 세상 속상해 마시고, 촌부가 마련한 차례 상으로 한바탕 크게 웃으시며 털어버리고, 기해년 추석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섬진강은 안개를 삼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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