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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칼럼] 묻는 이에게 문월도(問月圖)를 보내 물었다

[섬진강 칼럼] 묻는 이에게 문월도(問月圖)를 보내 물었다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19.09.0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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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천지가 시체가 산을 이루고 붉은 핏물이 흘러 강이 돼버린 시산혈해(屍山血海)의 지옥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
-도인(道人)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켜 천하에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지월도(指月圖)라는 생각

[서울시정일보] 촌부가 날마다 카톡으로 보내주는 글을 받아보는 이가, 오늘 오전 조국 교수의 부도덕함을 질타하는 서울대 학생들을 향하여 맹비난을 하는 어떤 사람의 글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세상이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롭기를 바라는 그가, 애써 그런 글을 지지하며 보내온 자체가 실망스러운 일이고, 세상을 사람이 사는 상식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를 바랐던 내 마음과는 달리,(물론 내 생각이지만) 이른바 요즈음 유행하는 확증편향의 사고를 가진 그와 논쟁을 할 생각도 없고 입장도 아니라서, 안타깝다는 한마디와 함께 조선 최고의 화가 탄은(灘隱) 이정(李霆1554~1626)이 말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문월도(問月圖)를 보내 물었다.(사진 참조)

작품을 보고 문제가 뭐고 무엇이 보이는지를 물었고, 끝에 “그대의 부부도 조국 교수의 부부처럼, 부부 사이의 일들은 물론 자녀들의 문제에 대하여, 아무것도 상의하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고 사는 것으로 이해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수신제가평천하니......자식의 일을 모르쇠로 일관한다느니 말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는 단문을 보내온 후 지금까지, 문월도(問月圖)를 보고 뭐가 문제이고 보이느냐고 물은 내 물음에는 답이 없다.
 
이정(李霆1554~1626) 사후 100년 뒤에 태어난 김광국(金光國1727~1797)이, 어떠한 연유로 달에게 묻는다는 문월도(問月圖)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른바 도선국사의 도참비결을 연구하는 촌부의 눈에는 문월도(問月圖)가 아니고, 도인(道人)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켜 천하에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지월도(指月圖)라는 생각이다.

이 문월도를 두고 일반 학자들은 그림속의 인물을 이정 자신으로 해석하면서, 어리석은 광해군을 조롱한 것이라 하고, 불교학자들은 늙은 스님이 달을 가리켜 깨우치는 것이라는 등 학자들 나름 해석이 다른데, 촌부는 그 다름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이 한 폭의 그림이 감추어 전하는 것을 도참으로 풀어보면, 임진왜란(1592~1598년)으로 피폐해버린 나라에서, 광해의 어리석은 패거리정치로 희망마저 잃어버린 백성들을 위로하고 천하를 안정시키라는 혁명의 메시지라는 것이 촌부의 견해다.

잠시 이 문월도(問月圖)가 그려진 시대를 보면, 7년 동안 치러진 임진왜란으로, 조선 천지가 시체가 산을 이루고 붉은 핏물이 흘러 강이 돼버린 시산혈해(屍山血海)의 지옥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남은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몸과 마음이 피폐하여 눈을 뜨고 숨을 쉬며 살아있는 자체가 고통스러운 나라였다.

이런 지옥 같은 나라에서, 임금인 광해의 무능하고 어리석은 패거리정치에, 백성들이 열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백성들이 열 받았다는 것은, 곧 하늘이 분노하였다는 뜻이고, 분노한 하늘을 달래는 것은, 어리석은 임금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임금을 추대하여, 새로운 희망으로 나가는 것뿐이었는데, 이 문월도(問月圖)가 바로 어리석고 부패한 임금을 바꾸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메시지라는 것이 촌부의 생각이다.

얼핏 아무런 생각 없이 이 문월도(問月圖)를 보면, 해 저문 초저녁 늙은 도인이 뜰 반석에 앉아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들어 초승달을 가리키고 있는 아주 평화로운 풍경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문인들의 그림에서 달이 임금을 상징하는 것이고, 그림속의 달이 뒤집혀 있음을 알고, 그 뒤집힌 달의 의미를 깨닫는다면, 이미 기울대로 기울어져 회생이 불가능한 어리석고 무능한 임금을 갈아치우자는 메시지라는 촌부의 해석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림속의 달을 보면, 요즈음 시간으로 음력 27일 이후 02시가 넘어 새벽에나 볼 수 있는 그믐달인데, 설마하니 종실(宗室)의 출신으로 시·서·화에 뛰어난 삼절로 명성이 높았으며, 자연의 현상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화가 이정이, 그것도 최소한 나이 60이 넘은 늙은 이정이, 초승달과 그믐달을 구분하지 못했을 거라는 것은, 한마디로 이정을 모독하는 일이며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처럼 해박한 지식을 가졌고 전문 화가인 이정이 초저녁 풍경을 그리면서, 실제의 그믐달을 가져다 새로운 희망으로 뜨는 초승달의 의미로 그려 놓은 것은, 어리석고 무능한 광해의 조롱을 넘어, 깊이 의미하는 바가 있는 것이고, 그 깊은 의미가 인조반정(1623년)으로 실현된 것이다.

추측해보면, 임금을 향하여 말 한마디 잘못하면, 혀가 뽑히고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그 엄혹한 시대에, 아마도 이 그림을 보여주면서 감상을 물었을 것이고, 이심전심으로 뜻을 모았을 것이다.

4백 년 전 어리석고 무능한 광해의 시대에, 천재 화가 이정이 그린, 해 저문 초저녁 늙은이가 집게손가락을 들어 가리킨 달과, 4백 년 후 오늘 우리들이 보고 있는 달의 차이가 무엇이고, 그 달을 바라보고 있는 민생들은 또 어떤 마음일까?

4백 년 전 달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이정의 마음이나, 4백 년 후 오늘 달을 보고 웃고 있는 민생들의 마음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는 없지만, 패거리정치로 나라를 말아먹은 광해의 시대나, 패거리정치로 날을 새고 있는 오늘이 다르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끝으로 이 글 역시 카톡을 통해서 그에게 보낼 것이고 그는 읽어볼 것인데, 누구에게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열망하는 아직은 젊은 그가 촌부가 해석한 달을 어떻게 말할지 궁금해진다.

어차피 자신의 생각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내가 보내준 달을 보지는 않겠지만, 촌부가 그에게 바라는 것은, 자식도 남편도 세상도 그리고 자신의 생각마저도 마음 밖에서 평상심으로 보라는 것이다.

섬진강은 안개를 삼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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