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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종사찰과 백두산 순례의 대장정.

중국 선종사찰과 백두산 순례의 대장정.

  • 기자명 박용신
  • 입력 2019.09.09 10:59
  • 수정 2019.09.0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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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은 부처의 정신을 깨달아 자기화하고 인격화하여 생활화하는 구체적인 수행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 불교의 수행법이다.

중국 선종사찰과 백두산 순례의 대장정.

 

-조사선의 발상지 황매현<삼조사, 사조사,오조사>

-민족의 영산 백두산, 그리고 가는 길

<불교에서 말하는 선(禪)은 무엇인가?>

선(禪)은 부처의 정신을 깨달아 자기화하고 인격화하여 생활화하는 구체적인 수행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 불교의 수행법이다.
이 선은 인도에서 발생되었지만 선불교의 사상은 중국으로 들어와 조사들의 의해 완성되어 조사선이라고도 한다.
좌선을 바탕으로 한 이 조사선은 남인도 출신인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선불교의 초조(初祖)가 되고, 다시 2조 혜가(慧可), 3조 승찬(僧璨), 4조 도신(道信), 5조 홍인(弘忍)으로 이어지고 육조 혜능(惠能)선사에 이르러 여러 분파로 선불교가 번창하여 법맥이 이어지고 있다.

▲ 선종사찰 삼조사를 찾은 조계사 불교대학총동문회 순례단
▲ 선종사찰 삼조사를 찾은 조계사 불교대학총동문회 순례단

[서울시정일보=중국]지난 8월 27일부터 9월1일까지 5박6일의 일정으로 조계사 불교대학총동문회(회장 장경태) 80명의 순례단과 이 조사들이 수행한 선풍의 법맥을 찾아 중국 선종사찰과 백두산 순례 길에 올랐다.

▲비행기 타고 5,138km 대장정 순례길을 시작했다.
▲비행기 타고 5,138km 대장정 순례길을 시작했다.

◆ 8월 27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른 아침 6시 입국 수속을 마치고 9시30분, 비행기에 탑승 11시 30분 두시간여 중국 허페이(합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대기하고 있던 2대에 버스로 식당으로 이동 점심식사를 마친 뒤, 오후 4시경(중국시간 :시간차1시간) 안후이성(安徽省) 천산현 천주산에 있는 3조사 승찬스님의 수행도량, 삼조사 사찰을 탐방했다.

▲ 삼조사 관용방장스님과 대중들이 순례단을 환영하고 있다.
▲ 삼조사 관용방장스님과 대중들이 순례단을 환영하고 있다.

일주문앞 광장에는 삼조사 "관용 방장스님"과 사중, 대중들이 깃발과 꽹가리 등을 동원해 열렬한 환대로 우리 일행을 반겨 주었으며 방장스님은 "삼조사를 방문해 주어 감사하다"는 인사와 를 돌며 친절한 해설과 차담으로 우리일행을 반겼다.

▲ 조계사 지도법사 일학스님이 관용 방장스님과 향을 올리고 있다.(가운데)
▲ 조계사 지도법사 일학스님이 관용 방장스님과 향을 올리고 있다.(가운데)

본래 나병 환자였던 승찬스님은 자신을 비관해 자포자기로 살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2조 혜가 선사를 만나 "제가 죄가 많아 나병을 앓고 있는데 선사께서 저의 죄를 참회케 하여 병을 낫게 해 주십시오 주십시오."라고 청하니 "그대는 죄를 가져 오노라. 죄를 참회시켜 주리라." "죄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죄는 모두 참회되었느니라. 그대는 그저 부처께 의지하여 안주해라."

삼조사 관용방장스님이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장경태 회장에게 기념 휘호를 전달하고 있다.
삼조사 관용방장스님이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장경태 회장에게 기념 휘호를 전달하고 있다.

즉, "마음이 부처며 마음이 법이니라." 모든 것은 본래 공하여 어디고 구속되지 않는 마음의 평정임을 깨닫고 열심히 수행하여 병이 나았고 평생 설법하다 선체로 입적했다. 경내에는 선채로 입적한 입화탑과 수행처 삼소굴이 있다. 승찬스님은 유명한 심신명 선시를 남겼다.

▲ 삼조사 방장 관용스님이 조계사 지도법사 일학스님에게 발우 기념품을 전달하고 있다.
▲ 삼조사 방장 관용스님이 조계사 지도법사 일학스님에게 발우 기념품을 전달하고 있다.
▲ 삼조사에서 다과를 대접받고..
▲ 삼조사에서 다과를 대접받고..
▲ 삼조사 승찬스님 사리탑 참배
▲ 삼조사 승찬스님 사리탑 참배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

◆8월 28일, 이른아침 황매현 호텔에서 이른 식사를 하고 오전 8:30 5조사 홍인스님의 설법도량 오조사(원명: 동산사)로 향했다. 1차 "사조사"에서 명기 방장스님의 법문이 예정 되어 있었으나, 명기스님의 급한 일정으로 오후에 방문키로 하고 오조사로 향했다.

▲ 오조사는 사찰 밑 광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10여분 올라간다.
▲ 오조사는 사찰 밑 광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10여분 올라간다.

◇ 오조사는 홍인(601∼674)스님이 주석했던 도량이다. 일곱 살 때 도신 스님과 첫만남에서 자신의 성씨가 ‘불성’이라고 했을 정도로 남달랐던 홍인스님. "불법을 깨쳐 널리 펴 보이겠다"는 평생발원으로 황매현 동쪽, 빙모산 백련봉에 오늘날 오조사가 된 선정사를 창건했다. 오조사에는 후에 6조사가 된 혜능스님이 수행하던 육조전에 방아 찧던 방에 디딜방아도 배치되어 있다.

▲ 오조사 일주문.
▲ 오조사 일주문.
▲ 오조사 사천왕상
▲ 오조사 사천왕상
▲ 대웅보전 삼존불, 순례자들이 예를 올리고 있다.
▲ 대웅보전 옆으로 여러 나한상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 대웅보전 옆으로 여러 나한상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 진신전에 모셔져 있는 홍인스님 좌상
▲ 진신전에 모셔져 있는 홍인스님 좌상
▲육조전에는 6조 혜능스님이 홍인스님에게가사와 발우를 물려받은 (衣鉢親傳), 혜능스님의 좌상이 모셔져 있다.
▲육조전에는 6조 혜능스님이 홍인스님에게가사와 발우를 물려받은 (衣鉢親傳), 혜능스님의 좌상이 모셔져 있다.
▲ 육조 혜능스님이 방아를 찧으며 수행하던 디딜방아.
▲ 육조 혜능스님이 방아를 찧으며 수행하던 디딜방아.
▲ 관음전에서 한 순례단 회원이 참배하고 있다.
▲ 관음전에서 한 순례단 회원이 참배하고 있다.

◇사조사로 향한다. 사조사는 인도식 선을 중국식으로 발전시킨 도신스님(580~651)이 주석했던 사찰이다. 3조에 이르기까지 탁발과 걸식 등으로 수행을 해 오던 스님들을 사조사를 창건, 이 곳에 안주시키며 선농일치 활선을 주창했다. 창건 당시 천여명의 스님들이 기거하며 수행하던 대사찰이었으나, 당 무종의 폐불정책 등으로 인해 흥망성쇄를 거듭, 많은 전각들이 소실되었으나, 근래 중국정부의 전폭 지원불사로 대사찰의 위용으로 중창되었다.

▲주차장이 한산하다.
▲주차장이 한산하다.
▲ 민주, 자유, 평등, 공정이라는 구호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 민주, 자유, 평등, 공정이라는 구호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 사조사 일주문
▲ 사조사 일주문
▲ 사조사 일주문
▲ 사조사 일주문
▲제2문에 설치된 약사여래와 천왕상
▲제2문에 설치된 약사여래와 천왕상
▲대웅전과 삼존불
▲대웅전과 삼존불

이 곳에서는 " 본 일행 회원들이 진행하고 있는 유명 선지식을 찾아가 법을 듣는 "53선지식 구법여행" 마흔 여섯 번째 법석으로 방장 명기스님의 법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날씨(36도)가 습하고 무더운 관계로 냉방시설이 되어 있는 강의 법회실로 이동 다도시연과 법문을 들었다.

▲ 차명인의 다도(茶道)시연.
▲ 차명인의 다도(茶道)시연.

먼저, 차를 즐기는 고장답게 다도 명인의 선다(禪茶)시연이 있었고 명기스님의 법문이 있었다. 명기스님은 이 곳 4조사 도신스님의 얼이 담긴 사조사를 찾아 주신 한국 조계사 불자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4조 도신스님에 대해 법문을 하는 사조사 방장 명기스님.
▲4조 도신스님에 대해 법문을 하는 사조사 방장 명기스님.
▲4조 도신스님에 대해 법문을 하는 사조사 방장 명기스님.

"30여 년 쌍봉산 사조사에 주석하신 도신스님은 선법을 배우고 실천하며 설법하는 것을 평생 일로 삼아 살아오시며 선농일치 생활선을 주창하셨습니다.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를 중국 불교로 정착시키셨으며, 모두 마음에 불성이 있지만, 번뇌와 분별심으로 불심의 참을 보지 못하니 부처님을 향한 지극한 신심으로 자비와 지혜의 마음을 내어 깨달음에 이르러야 하며, 불자의 근본경인 금강경을 끊임없이 강독, 지혜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강설 법문했다.

▲보시금과 기념품 전달
▲보시금과 기념품 전달
▲ 다 함께 기념 촬영.
▲ 다 함께 기념 촬영.

쉬임 없는 생활속에서 수행으로 자성의 불성을 찾고 마음의 주인, 운명의 주인이 되고 스스로 지금의 주인이 되어야 깨달음에 이르며 이것이 생활선이라고 했다.

▲ 공양실에서 식사를 대접 받았다. 소박한 산채 밥상, 뷔페식.
▲ 공양실에서 식사를 대접 받았다. 소박한 산채 밥상, 뷔페식.

40여분의 법문을 마치고 사조사 공양간으로가 점심식사를 대접받고 3시간여 버스를 달려 무한으로 이동했다.

▲무한공항으로 가는길 양자강을 지난다
▲무한공항으로 가는길 양자강을 지난다
▲잘 정돈 된 중소 도심, 휴지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들었다.
▲잘 정돈 된 중소 도심, 휴지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들었다.

◆8월29일, 아침 7시50분 무한공항에서 중국 자국비행기를 타고 심양공항으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6시간의 긴 여정을 시작한다. 차창으로 우리나라 강원도 시골 풍경들이 지나간다.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 듬성듬성 보이의 붉은 기와 시골집, 한가로운 바람이 불지만 쓸데 없는 걱정이 인다. 옥수수가 딱 삶아 먹으면 좋을 것같이 잘 익었다. 저 많은 걸 누가 추수하누?

▲ 고속도로 톨게이트 비교적 한산하고 아직 하이패스 시스템은 안 되어 있었다.
▲ 고속도로 톨게이트 비교적 한산하고 아직 하이패스 시스템은 안 되어 있었다.
▲무한 공항 입구,
▲무한 공항 입구,
▲ 중국 남방항공 비행기를 타고 심양으로 간다.
▲ 중국 남방항공 비행기를 타고 심양으로 간다.
▲인천국제공항만 큰 줄 알았다. 중국 심양공항.
▲인천국제공항만 큰 줄 알았다. 중국 심양공항.

일직선으로 뚫린 고속도로가 한가롭다. 아주 간혹 일제 승용차 외제 승용차들이 지나고 버스는 결코 80km를 넘지 않는다. 깨끗하게 잘 청소 된 고속도로에 한참을 비가 뿌린다. 지루해 조는 사람이 많은 관계로 가이드 목소리도 잦아 든다. 작은 마을, 좀 큰 마을, 도로 옆에는 어김없이 소음차단 가림 막이 설치돼 있다.

▲ 때론 황금벌판도 지나지만...
▲ 때론 황금벌판도 지나지만...
▲ 무궁무진 끝없이 이어지는 옥수수밭. 강원도 옥수수밭 얘기는 이제 안한다.
▲ 무궁무진 끝없이 이어지는 옥수수밭. 강원도 옥수수밭 얘기는 이제 안한다.

한가한 간이 휴게소에 들러 점식 식사를 한다. 일상 우리나라 도로 옆에서 가판대에서 옥수수를 팔듯, 옥수수를 팔고 있다. 대략 우리 돈 1000원 맛이 있었고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다. 다시 백두산을 향해 달려간다. 우리나라 고속도로였으면 쌩쌩 벌써 도착했을 시간 마냥 가고 있다.

▲ 간이 휴게소, 역시 백두산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났다.
▲ 간이 휴게소, 역시 백두산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났다.
▲ 간이 휴게소, 역시 백두산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났다.
▲ 시골밥상 한 차림
▲ 옥수수 가판, 한 자루 천원.
▲ 옥수수 가판, 한 자루 천원.
▲ 백두산 가는길, 잘 정돈 된 고속도로, 너무나 깨끗하다.
▲ 백두산 가는길, 잘 정돈 된 고속도로, 너무나 깨끗하다.
▲ 백두산을 볼 수 있는 길조일까? 무지개가 떠있다.
▲ 백두산을 볼 수 있는 길조일까? 무지개가 떠있다.
▲ 지나는 마을에서 저녘 연기가 난다. 고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
▲ 지나는 마을에서 저녘 연기가 난다. 고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

홍조 기와집 굴뚝에서 저녘 연기가 난다. 어느 땐가 본 것 같은 정겨운 풍경이다. 백두산으로 다가갈 수록 후두둑 후두둑 비가 내린다. 내일 백두산에 오를 수 있을까? 가이드 농담으로 백두산은 백 번 올라야 두 번 밖에 못 본다고 했고, 천지는 못 본 사람 천지라서 천지라고 했다.

▲ 궁중같은 네온,중국은 전기 사정이 좋은가 봅니다. 어디곤 비교적 현란.
▲ 궁중같은 네온,중국은 전기 사정이 좋은가 봅니다. 어디곤 비교적 현란.

드디어 7~8시간 버스에 실려 <송강하 이도백하> 백두산 밑 식당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8시20분,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산장 호텔로 이동을 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조심스럽게 사전 준비한 제물을 차리고 백두산 산왕대신께 산신제를 올렸다.

중국에서 백두산(장백산)은 3개코스로 오른다. 1코스 서파, 2코스 북파, 3코스남파 코스이다.
중국에서 백두산(장백산)은 3개코스로 오른다. 1코스 서파, 2코스 북파, 3코스남파 코스이다.

◆8월30일, 7시30분 셔틀버스가 산장호텔로 일행들을 태우러 왔다. 백두산 서파 산문입구 매표소 까지, 다시 10여분 테크 길을 걸어 본격 백두산 밑 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 간다. 비가 오는 날임에도 사람들이 참 많이 와 있다. 거의 한국사람들이다. 우리는 왜 그토록 한 생, 백두산에 오르기를 소망할까?

▲ 백두산 밑 호텔 산장.
▲ 백두산 밑 호텔 산장.
▲산문 입구 입장권 판매소.
▲산문 입구 입장권 판매소.
▲ 입장권을 검열받고 100m쯤 테크길을 걸어가 셔틀버스에 오른다.
▲ 입장권을 검열받고 100m쯤 테크길을 걸어가 셔틀버스에 오른다.
▲ 셔틀버스 주차장.
▲ 셔틀버스 주차장.
▲지그재그 산길을 오르는 동안 비오는 차창으로 고산 늙은 자작나무들이 지난다.
▲지그재그 산길을 오르는 동안 비오는 차창으로 고산 늙은 자작나무들이 지난다.

경사가 심한 산길을 버스는 빠르게 오른다. 늘 상 그렇게 다녀서 익숙한 코스라 그런지 거침없이 달린다. 다들 약간 겁먹은 모습들, 차창으로 고산 자작나무들과 전나무들이 지난다. 셔틀버스가 멈춘 주차장 아래로 운무의 쌓인 풍경들이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모두가 우비로 무장한 사람들, 본격 1236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간절히 백두산이 본연의 자태를 보여 줄 것을 기도하며..

▲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 오는데 야생화를 채취하지 말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 오는데 야생화를 채취하지 말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 작은 폭포가 앙증 맞게 흐른다.
▲ 작은 폭포가 앙증 맞게 흐른다.
▲ 길 옆, 용담초 군락지를 만났다
▲ 길 옆, 용담초 군락지를 만났다

힘겹게 오르는 계단 옆, 백두줄기 협곡으로 작은 폭포가 흐르고 아름다운 화생화 용담초 군락을 만난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끔 "가마! 가마!" 소리가 들린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가마, 왕복 14만원을 받는다. 편도 5만원, 점점 발이 무거워 진다.

▲ 가마,가마, 힘겨운 목소리... 힘든 이와 편한 이, 그래도 마음이 불편하다.
▲ 가마,가마, 힘겨운 목소리... 힘든 이와 편한 이, 그래도 마음이 불편하다.

드디어 백두산 천지! 안개에 덮혀 천지의 윤곽이 희미하지만 가슴으로 벅찬 감동이 밀려든다. " 그래! 내가 백두산에 올랐어!" 사람들은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내가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에 대하여.. 그래서 더 많이 백두산 천지를 안으려 담으려 이리 저리 애쓴다.

▲드디어 백두산에 오르다.

▲ 그래도 어렴풋 모습을 보여줌에 감사하고..

 

▲모두 기념촬영을 하고..

세시간여의 이별의 시간, 우리들은 백두산과 이별을 하고 세시간여 버스를 타고 통화에 와 숙소에 들었다.

 

▲ 통화시 무척 분비고 도회가 잘 정돈된 느낌, 그러나 횡단보도를 무시하고 사람들이 자주 건너 다닌다.

 

◆8월31일, 오전8시, 집안 압록강 변으로 가 북한땅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는다. 압록강에 방생의식을 하고 보트를 타고 강변을 한 바퀴 돌았다. 강물의 폭 4분의3 지점쯤 국경 경계부표가 떠 있다. 북한땅 멀리, 구리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난다.

 

▲ 압록강변에서 방생의식.

 

▲압록강 줄기를 타고 보트가 시원하게 물살을 가른다. 그러나 부표가 떠 있는 국경은 넘지 않는다.

 

▲보트에는 운전자 제외 7명이 탄다.

 

▲북한땅 멀리 구리공장 굴뚝이 보이고 압록강 물살은 몹시 빨랐다.

 

점심을 먹고 다시 가까운 곳, 광개토대왕(호태왕)묘와 비를 둘러본다. 묘는 드넓은 집안(集安) 분지 가운데 우뚝 위치해 대왕의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근처 장군총(장수왕묘)을 둘러 본다. 큰 돌들을 다듬어 피라미드처럼 쌓아 거대하게 조성했다. 아버지 광개토대왕 묘보다 더 크다. 중궁에서는 이 지역을1994년 역사문화 보존지역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집안에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숨결을 느끼고 심양으로 향한다.

 

▲광개토대왕 비와 비각. 고구려를 증명하는 소중한 우리 역사적 사료이다. 밖에 방치되었던 것을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 광개토대왕 능.

 

▲ 세상을 호령하고 싶었던 광개토대왕, 압록강이 흐르는 너른 분지 중앙에 능이 우뚝 하늘 향해 조성되어 있다.

 

▲광개토대왕 아들 장수왕 능이다. 피라미드처럼 규모가 꽤 크다.


◆9월1일,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오전 10시, 요녕성 박물관을 관람한다. 14개의 전시실에 구석기 유물과 청동기 유물 등과 당삼채 명청시대 서예, 회화, 도자기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고구려의 유물들도 전시되어 있어 고구려가 중국 요동지역에 미친 영향력을 가늠해 볼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

 

▲ 요녕성 박물관.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 어디선가 본듯한 항아리

오후 18시45분 심양공항을 출발 인천국제공항에 19시45분에 도착, 5박6일의 중국 대장정 순례의 길을 마감했다.

▲ 그렇게 다시 비행기 타고 우리나라에 왔다.뭐니뭐니 해도 내나라가 좋다.

◎인천국제공항⇒ 합비국제공항(허페이1,065km 2시간40분)⇒천주현 3조사(223km 2시간30분))⇒황매현 5조사,4조사(90km 2시간)⇒무한공항(우한 224km 3시간30분)⇒심양공항(선양 1,795km 2시간30분)⇒ 백두산 이도백하(510km 6시간40분)⇒통화(퉁화 255km 3시간30분)⇒집안(지안 96km 1시간30분)⇒심양(선양 330km 3시간40분)⇒인천국제공항(550km 1시간20분)

총5,138km 약31시간을 비행기와 버스에서 보낸 대장정.

 

▲ 시골마을 전경. 잘 정돈되고 깨끗하다

 

▲ 사루비아 핀 간이 휴게소, 소박한 청결이 마음에 들었다.

 

-맺 음-

이번 선종사찰과 백두산 순례는 좀 힘든 대장정의 일정이었으나, 새삼 나를 점검하고 돌아보는 성찰의 뜻 깊은 시간이 되었다. 선지식들이 끊임없는 수행과 정진 속에서도 선농일치 생활선을 주창하며 자신과 남, 후학을 위해 배려라는 큰 마음을 내었을 터, 협치 속에서 이루어 낸 선화(禪花)라 그 향기가 더욱 진하고 향기로웠다. 중국은 이미 예전에 중국이 아니다. 거리는 너무 깨끗했고 잘 정돈된 농촌, 무한한 대지 땅덩어리, 무궁무진한 발전성에 대해 솔직히 겁이 난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서울시정일보 박용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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