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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칼럼] 최고의 명약 불사선 불사악을 다시 논함

[섬진강 칼럼] 최고의 명약 불사선 불사악을 다시 논함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19.08.2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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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을 가진 국민 각자가, 어느 당이 선하고 어느 당이 악하며, 전라도당 경상도당 충청도당으로, 분별하고 차별하며 집착하여 있는 어리석음의 정치를 버리고 초월해야

국사봉의 저녁 노을

[서울시정일보] 흔히 불교에서 말하는, 선(善)도 생각하지 말고, 악(惡)도 생각하지 말라는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은, 일부 정치에 매몰된 몰지각한 승려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선을 가벼이 보거나, 악을 묵인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며, 이편도 저편도 들지 말라는 의미는 더욱 아니다.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은, 선(善)한 마음도 없고, 악(惡)한 마음도 없는, 그야말로 선악이 없는 마음, 본래의 자리 진면목을 말하는 것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면, 선과 악이라는 분별과 차별로 나타난 현상 이전의 상태 즉, 무엇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전의 상태인 근원을 보라는 것으로, 가장 적극적이고 완벽한 진리의 가르침이다.

 우리들 마음은 인식한 대상을 무엇 무엇으로, 예를 들어 선과 악으로 또는 사랑과 미움 등등 갖가지로 분별하고 집착하는 기능과 습성을 가졌지만, 동시에 그것들을 단박에 버리고, 초월하여 나가는 절대적이고 무한한 능력을 가졌다.

그러므로 마음이 일으킨 분별의 결과인 선악이 없는 마음, 분별 이전의 참모습을 보라는 것은, 과거로 회귀하라는 것이 아니고, 선악의 분별이 없는 처음 그 마음으로, 대립되고 정체된 현실을 초월하여 나가라는 것으로,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밝혀주는 등불 같은 가르침이며, 오가는 사람들을 차별 없이 건네어 주는 나룻배와 같은 것으로, 단순하지만 누구나 알기 쉽게 일러주는 더없이 쉽고 지극한 깨우침이다.

이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을 우리네 삶속으로 끌어오면, 일상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시비와 다툼을 끝내고, 끊임없이 현실을 초월하여 나가게 하는 아주 신묘하고 신묘한 법이며 최고의 명약이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각종 정신질환을 일으키며, 심할 경우 사람을 죽이거나, 자살을 하게 하는 등, 정신과 몸을 병들게 하는 모든 병의 근원이 되어, 몸과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암보다 무서운 스트레스를 치유하여 주는 최고의 명약이 이것이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트레스 자체가 실체가 없는 분별과 집착이 만들어놓은 허상임을 깨달아, 그 즉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서, 거짓과 꾸밈이 없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게 하여 주니, 이야말로 신묘한 법이며 약이다.

마치 비바람이 멎은 하늘에서 새들이 자유롭게 날듯, 맑은 강물에서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유영(遊泳)하면서 물맛을 즐기듯, 소치는 아이가 소잔등에 올라앉아 즐거이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가듯, 그렇게 스스로 마음의 주인이 되어, 스트레스가 없는 삶을 영위하며,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게 하여 주는 아주 신묘한 명약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 각자가 여야 정치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국정을 바로 세우고, 민생들을 안락하게 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주권을 가진 국민 각자가, 어느 당이 선하고 어느 당이 악하며, 전라도당 경상도당 충청도당으로, 분별하고 차별하며 집착하여 있는 어리석음의 정치를 버리고 초월하여, 국리민복의 자리, 국가와 국민의 자리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을 내어, 민생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부패한 패거리정치와 아집의 정치를 끝장내고, 앞서가는 선진정치로 세상이 부러워하는 즐겁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가는 방향타가 이것이다.

끝으로 이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을, 관념이 아닌 과학으로 보아도, 우주와 사람의 실체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변화)하는 인연 속에서, 서로 상생하는 공존의 작용과 서로 반목하며 불화하는 반작용이 있을 뿐, 선과 악은 어디에도 실재하지 않는 것이니, 선과 악이라는 분별이 없는 마음, 본래의 모습인 진면목을 보라는 것은, 과학으로 입증되는 진리의 가르침이다.

애욕(愛慾)이든, 물욕(物慾)이든, 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처음 나타난 현상에 대하여 또는 외적인 대상에 대하여 무엇이라는 인식을 하고, 다시 그것을 분별을 하고, 분별을 통해 고착돼버린 허상에 집착을 하면서, 고통스럽게 살다 죽는 것이 우리네 사람들이다

그래서 글을 배운 바 없는 혜능(慧能 : 638~713)대사는, 자신을 죽이고 스승이 전한 의발(衣鉢)을 빼앗으려 뒤쫓아 왔다가, 참회하며 법을 구하는 혜명(慧命)에게, 모든 연분(緣分)을 버리고 모든 생각을 끊고 듣겠다는 약속을 받은 뒤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 선(善)도 생각하지 않고 악(惡)도 생각하지 않는 그대의 참 모습은 무엇이냐?”라고 물어주고, 맑고 청정한 마음으로 외적인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

천 년 전 대유령(大庾嶺)의 혜능은
자신을 죽이려 뒤쫓아 온 이를 향하여
선악이 없는 마음으로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하여
자신을 죽이려는 칼끝에서 살아나고 
칼을 들고 죽이려고 온 이도 살렸는데.........

천 년 후 섬진강 강변에 앉은 나는
날마다 어느 마음으로
무엇을 향하여
누구를 향하여
어떤 마음을 내고 있는가?

하루해 저물어 간 저녁
신령한 국사봉(國師峯)에 비낀
붉은 노을이 아름답다.

섬진강은 안개를 삼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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