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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통일신라시대부터 시작...참빗장

국가무형문화재. 통일신라시대부터 시작...참빗장

  • 기자명 배경석기자
  • 입력 2019.07.0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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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양 없이 제작된 참빗

[서울시정일보] 문화재청은 ‘참빗장’을 국가무형문화재 신규종목으로 지정 예고하고, 고행주 씨를 보유자로 인정 예고했다.

이번 국가무형문화재 신규종목으로 지정 예고된 ‘참빗장’은 빗살이 가늘고 촘촘한 머리빗을 일컫는 참빗을 만드는 기술과 그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말한다. 우리나라 빗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통일신라 기록에서 처음 나타나지만, 참빗은 청주 미평동·성화동 삼국 시대 유적에서 출토되어 삼국 시대부터 참빗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어용 장식품을 제작하던 중앙관청 중상서에 빗을 만드는 소장이 소속되어 활동했고, 태안 앞바다에서 출수된 고려 시대 선박 마도 1호선과 마도 3호선에서도 참빗이 나와 당시 왕실과 귀족층을 비롯해 참빗이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빗을 만드는 장인들이 세분화되어, 참빗 명칭이 기록으로 등장한다. 조선 초기 세종실록의 ‘오례’에서 참빗을 가리키는 ‘죽소’라는 명칭을 확인할 수 있으며, 경국대전에 따르면 경공장에 대나무로 빗을 만드는 ‘죽소장’을 별도로 두어 참빗을 제작했다을 알 수 있다. 1477년 성종실록에는 중국에 참빗 1,000개를 하례품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어 참빗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특산품이었음을 보여준다.

경국대전에서는 빗을 만드는 기술에 따라 얼레빗을 만드는 목소장, 대나무로 빗을 만드는 죽소장, 빗의 때를 제거하기 위해 멧돼지 털로 빗솔을 만드는 소성장 등으로 구분했다.

현재 대표적인 유물로는 조선 23대 임금 순조의 셋째 공주인 덕온공주가 7세의 나이에 공주로 책봉되던 때에 사용했던 ‘덕온공주 유물’에 참빗이 포함되어 있다.

참빗은 빗살의 사이가 촘촘해 일반적으로 옛날 사람들이 머리를 단장하고 때를 빼거나 이를 잡아내는데 주로 사용됐다. 이러한 참빗은 대나무를 가늘게 자르기, 빗살을 실로 매기, 염색하기, 접착과 건조, 다듬기 등 약 40여 가지 공정을 거쳐 완성된다. 기본적으로 대나무를 다양한 크기로 자르고 손질해야 하며, 빗살의 간격을 촘촘하고 고르게 유지시키는 세밀한 작업이 핵심적인 공정이라 숙련된 손놀림이 중요하다.

이번에 ‘참빗장’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고행주 씨는 현재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5호 참빗장’ 보유자로서, 1945년에 입문해 지금까지 74년간 참빗장의 기술을 전승하고 있는 장인이다. 고행주 씨의 집안은 그의 증조부인 고 고찬여 옹이 생계를 위해 참빗을 제작한 이래, 현재 아들까지 5대가 대를 이어 담양에서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동안 고행주 씨는 전라남도와 담양군에서 시행하는 각종 시연행사에 참석하고, 전국공예품 경진대회 등 다수의 대회에서 수차례 입상하는 등 참빗이 국민의 관심에서 잊히지 않도록 끊임없이 전승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이번 보유자 인정조사 과정에서는 참빗 제작의 숙련도가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결과, 고행주 씨가 전승능력, 전승환경, 전수활동 기여도 등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아 국가무형문화재 참빗장 보유자로 인정 예고됐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한 ‘참빗장’과 그 보유자로 인정 예고한 고행주 씨에 대해서 30일 이상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과 보유자 인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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