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정일보 김원재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21일(금) 10시 30분 대전국립현충원에서 홍순칠 대장을 비롯한 독도의용수비대원 11명(배우자 4명 합장)의 합동안장식을 거행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독도의용수비대원은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개인선영 등에 안장되었으나, 독도의용수비대원의 특별한 희생을 기리고 명예를 선양하기 위해 2013년 7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독도의용수비대원도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대상이 되도록 하였다. 이번 11명 대원의 국립묘지 안장은 독도의용수비대원으로서는 처음이다.
독도의용수비대원은 일본의 영토침략 야욕으로부터 목숨을 걸고 싸워 독도를 지켜냄으로써 현재 우리나라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현재 대원 33명 중 사망자는 24명이고, 이 중 상이를 입어 상이군경으로 등록된 2명만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 독도의용수비대 현황
(단위 : 명)
독도의용수비대원 현황 |
독도의용수비대원 사망자 안장 | ||||||
소 계 |
생 존 |
사 망 |
행방불명 |
소 계 |
개 인 선영등 |
대 전 현충원 |
영 천 호국원 |
33 |
8 |
24 |
1 |
24 |
18(11) |
2 |
4 |
※ 독도의용수비대원 국가유공자 등록현황
(2014. 10월 기준)
인원(명) |
전․공상군경 |
보국수훈자 |
미 등 록 (소재불명) | ||||
소계 |
본 인 |
유 족 |
소계 |
본 인 |
유 족 | ||
33 |
14 |
6 |
8 |
18 |
2 |
16 |
1 |
※ 생존자 8명, 유족 24명, 행불 1명
이 날 합동안장식 전 10시 국립대전현충원에서 독도의용수비대원 주관으로 제60주년 독도대첩 기념식을 개최한다. 행사에는 이병석 기념사업회장(국회의원, 포항시), 독도의용수비대 생존대원과 유가족 등 300여 명이 참석한다.
한편, 독도수호의 상징적인 건물이 될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은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의 국토수호정신을 계승하고 명예를 선양하며, 미래세대에게 애국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지난 8월 25일 울릉군 천부리에서 기공식을 개최하였고, 2016년 8월에 완공될 계획이다.
독도의용수비대 활동사항
◆ 독도의용수비대는 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한국전쟁 혼란 속에서 일본인들은 1953년 3차례에 결쳐 독도에 상륙하여 1948년 미군 폭격연습 과정에서 희생된 우리 어부의 위령비를 파괴하고 일본 영토 표지를 하는 등 불법행위를 자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1953년 4월에 홍순칠 대장을 비롯한 6․25참전 경험이 있는 울릉도 거주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순수 민간 조직인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자체 구입한 무기와 울릉경찰서장으로부터 지원받은 박격포, 증기관총, M1소총 등 빈약한 장비를 갖추고 독도를 지키게 되었다. 이들은 독도에 대한 우리나라의 영유권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독도 근해에서 조업 중인 울릉도 주민을 보호하고 독도에 무단 상륙한 일본인의 축출 및 일본이 불법적으로 설치한 영토표지를 철거했으며 일본 순시선과 여러 차례 총격전도 벌였다. 그리고 큰 통나무에 검은 칠을 해 “위장 대포”를 만들어 물리치기도 했으며 동도 암벽에 “한국령”이라 새기고 독도수비의 결의를 새롭게 했다. 이들은 독도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며 3년 8개월 동안 독도를 지키고 1956년 12월 경찰에 임무를 인계하였다. 임무를 인계한 후에도 독도방파제 설치를 정부에 건의하고 독도지키기와 독도가꾸기 운동을 꾸준하게 벌였다. 이러한 공로로 정부에서는 1996년 4월 故 홍순칠 대장에게는 보국훈장 삼일장을, 나머지 대원에게는 보국훈장 광복장을 수여하여 이들의 애국심을 기렸다.
- 독도사랑 나라사랑(독도의용수비대 기념사업회 발간)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