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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칼럼] 한국전쟁 제2의 6.25 발생 걱정해야...3년 동안의 전쟁으로 인명 피해가 약 450만 명에 달해

[포토칼럼] 한국전쟁 제2의 6.25 발생 걱정해야...3년 동안의 전쟁으로 인명 피해가 약 450만 명에 달해

  • 기자명 황문권 기자
  • 입력 2019.06.2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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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현재 20~30개 추정 내년에는 얼마나 늘어날까?

6·25 전쟁.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6·25 전쟁 당시의 여러 모습. 장진호전투에서 후퇴하는 미국 해병대, 인천에 상륙하는 UN군, 미국 전투기, 방조제를 넘어가고 있는 UN군, 미국 탱크 M-26 앞에 아기를 업고 있는 피난민 등 6·25 전쟁 당시의 모습들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 Parsecboy / wikipedia | Public Domain

[서울시정일보] 남침으로 시작한 6.25가 올해로 69주년이다. 특히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이다. 지금은 북한의 핵이 현재 20~30개로 추정되며 내년이면 얼마나 늘어날지 알 수가 없는 현실이다 또한 중공도 러시아도 핵을 가지고 있다. 동북아의 핵의 현실이고 오직 대한민국과 일본은 비핵이고 미국만 핵을 가지고 있는 현실이다.

김일성은 소련의 스탈린. 중공의 마오쩌둥의 남침 수락 하에 6.25를 일으켰다. 한국의 6.25전쟁은 지구의 국제적 역사에도 남침으로 시작한 전쟁을 文은 내란 정도로 부정하고 있다. 

다음 백과사전에는 6.25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6·25사변이라고도 하며, 국제적으로는 한국 전쟁이라 불린다. 소련의 지원으로 군사력을 키운 북한이 38˚선 전역에서 남침하여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였다.
국군은 북한의 앞선 병력과 무기에 밀려 한 달 만에 낙동강 부근까지 후퇴하였다. 이어 미국 주도로 유엔 안전 보상 이사회가 열려 유엔군이 파병되었다. 유엔군의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서울을 되찾고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다. 하지만 북한의 요청으로 중국군이 개입하자 다시 서울을 빼앗겼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전투가 계속되었다. 
3년 동안의 전쟁으로 인명 피해가 약 450만 명에 달하고, 남한의 43%의 산업 시설과 33%의 주택이 파괴되었다. 남북한은 휴전 상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재인 종북 좌파 정부는 6.25를 내란성격으로 보고 있다. 대법원 판결은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판결했다. 지금의 국제적 정세는 휴전상태의 6.25가 다시 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여러 가지 징후들이 발생해 있다고 진단을 한다.

북한은 김씨 3대를 이어서 핵무장 무장을 자유 대한민국의 적화통일이 목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한반도 정세는 국제적으로도 국내적으로도 제 2의 6.25 발발의 위험성이 극대화 하고 있는 현실이 우리들 앞에 서 있다는 점을 꼭 알아야 한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다.

한편. 6.25는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전투행위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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