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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사학의 정체는 무엇인가?

일제 식민사학의 정체는 무엇인가?

  • 기자명 명성(영한) 논설위원
  • 입력 2014.06.15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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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민사관은 한국을 침탈하기 이전에 준비됐다.

초대 조선총독 테라우치마사다케
일제 식민사학의 정체는 무엇인가?


일본의 식민사관은 한국을 침탈하기 이전에 준비됐다. 그 정체를 밝혀주는 자료가 일본인들이 조선사를 편찬하여, 그들끼리 업적을 자랑하기 위해 만든 <조선사 편수사업개요>에서 드러난다.

"일·한 합방이 된 이 마당에 조선인에게 그들의 역사를 읽게 한다면 그들로 하여금 옛날을 생각하게 하여 독립국 시대의 구몽(舊夢)에 빠지게 할 우려가 있다고 하나 조선에는 자고로 사적이 많으며 조선인은 예로부터 독서와 작문력이 있어 결코 문명인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문화민족을 무지몽매의 영역에까지 억압한다는 것은 오늘날의 문명 세태에서 불가능하다. 그런데 고래(古來)의 사서(史書)는 현대(일제강점기)와 관계없는 것이기 때문에 독립시대의 옛꿈에 빠지게 할 폐단이 있고 신작들은 日·淸(청나라), 日·露(러시아)간의 세력 경쟁을 서술하여 조선이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등 그 사서들이 심히 고혹케 한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그들의 역사를 못 읽도록 절멸하는 것은 오히려 비밀리에 이를 전파하는 역효과가 날 뿐이다. 그러니 차라리 이러한 사서들을 대신하여 공명·정확한 새 사서들을 만들어 그들에게 읽게 하는 것이 동화의 효과를 가져오는 첩경이며 여기에 바로 조선반도사의 편찬을 새로이 하는 주된 이유와 취지가 있는 것이다."

일제의 조선사 편수 취지다. 여기서 조선 사료 인멸의 증거가 드러난다. 또한 조선사편찬을 놓고 그들 내부에 이견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보다 교활한 방법이 채택되어 일본인들이 조선사를 쓰는 비극이 연출된 것이다.

일제는 한국 침탈 전부터 조선사 왜곡 편찬 계획을 가졌었다. 1910년 한국을 강제 침탈한 일제는 2개월도 못 된 11월 조선 전국에서 사료 강탈에 나섰다. 가장 악질적인 기구였던 조선총독부 취조국 지휘로 경찰을 앞세워 전국의 서점과 향교·서원·양반가의 서고를 뒤진다.

이들은 강탈한 한국 사료를 분류,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불태워 버렸다. 일제가 인멸한 서적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광복후 출간된 <제헌국회사>는 20여만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신채호의 <을지문덕>, 장지연의 <대한新地誌>, 이채병<애국정신> 등과 엄청난 고서(古書)들이 이 때 수난을 당했다. 일제의 한국 사료 압수 작업은 3·1독립선언까지 계속되었다.

3·1독립선언으로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를 표방하고 부임한 조선총독 사이토마코토는 부진한 <조선사>편찬을 독려하여 1922년 "조선에서의 교육 시책의 요결"을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먼저, 조선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무능,악행을 들추어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인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조(父祖)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라. 그러면 조선인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게 될 것이며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 때 일본의 사적, 일본의 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면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일본이 조선인을 반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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