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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북한에선...한국산 제품부터 드라마 DVD까지 버젓이 유통

지금 북한에선...한국산 제품부터 드라마 DVD까지 버젓이 유통

  • 기자명 황문권 기자
  • 입력 2013.11.0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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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정일보 황문권기자] 어떤 지역을 방문해 사람 사는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시장에 가보라는 말이 있다. 북한의 시장은 사람 사는 모습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가 갖는 딜레마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장소다. 2010년 탈북한 조천국 열린북한방송 기자로부터 북한의 시장에 대해 들어본다.

한국에 온 후 오래지 않아 동대문 시장에 가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한국이지만 시장 풍경만은 북한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 사는 세상은 다 같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 이처럼 지역에 따라 규모는 다르지만, 북한에도 한국처럼 활기찬 분위기의 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내 고향은 평남 평성인데 이곳에는 북한 최대의 시장이 있다. 이는 평성의 독특한 지리적 이점 덕분이다. 북한의 각지에서 평양으로 진입하려면 평양 여행 허가증이 있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평양의 길목인 평성역에서 여행증을 검열한다. 따라서 여행증이 없는 상당수 사람은 평성에서 하차해야 한다. 또 평성에서는 중국과 맞닿은 신의주도 자동차로 한두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어 중국과 교역하기에도 좋다.

[달러 위폐 50~70% 가격에 거래]

흔히 ‘장마당’이라고 불리는 북한 시장이 한국과 다른 점은 세 가지 정도인데 우선 시장 입구에 환전꾼들이 있다. 북한에서는 북한돈 이상으로 달러나 중국 위안화가 인기 있는 화폐이기 때문이다. 특이한 점은 공식시장에서 가(假)달러와 진(眞)달러가 동시에 유통된다는 것이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위폐를 제작하는 나라가 북한인 만큼 위폐가 버젓이 유통되는데 가달러는 진달러의 50~70% 가격에 거래된다.

‘고양이 뿔 빼놓고 다 있다’고 할 정도로 없는 물건이 없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한국에는 백화점·마트·편의점 등 다양한 유통업체가 있지만, 북한에서는 시장이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선 자동차가 고장 나면 카센터가 아니라 시장에 가는 식이다. 그곳에 필요한 부품이 다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거래되는 것도 다른 점이다. 부뚜막 수리공이나 가정부가 필요하다면 시장에서 찾는다. 일종의 인력시장 기능까지 하는 셈이다.

하지만, 북한의 시장이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농수산물을 주로 거래하고 담배나 술, 가전제품 등을 몰래 파는 정도였다. 하지만, 북한 경제사정이 급격히 악화되고 1994년 배급이 중단되면서 시장은 확장일로를 걷게 됐다. 원래 계획경제였던 북한에서 주민들은 국가가 공급하는 물품으로 생활하는데 배급 중단으로 시장이 아니면 생활을 해나갈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북한 체제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당국이 주민을 먹여 살릴 능력이 없어지면서 시장은 이제 주민들의 생존에 필수요소가 된 반면 당국이 두려워하는 온갖 반체체적 요소, 즉 한국이 잘산다는 정보부터 체제를 위협하는 발언 등이 유통되는 곳 역시 시장이기 때문이다.

[한국 화장품·의류 대표 인기품목]

실제 시장에서는 흔히 ‘알판’으로 불리는 한국 영화·드라마, 미국영화 DVD가 공공연히 거래된다. 한국 화장품과 옷도 인기 품목이다. ‘삼성’이나 ‘엘지’ 상표를 붙인 가전제품들도 버젓이 유통된다. 내 경우도 집에서 쓰던 마이크가 고장 나 삼성 제품이 좋다는 친구의 추천으로 시장에서 구입했는데 품질이 좋아 놀랐던 기억이 있다.

중국산 의류를 ‘아랫동네’(한국) 것이라며 속여 파는 짝퉁 한국 옷도 있다. 초코파이, 비누, 칫솔 같은 제품도 흔한데 개성공단에서 나눠준 물품이 시장으로 흘러든 것이다. 이렇다 보니 북한에서도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다들 화장품에 가전제품, 심지어 칫솔까지 한국산을 쓴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상거래로 부를 축적하는 예도 생겨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큰돈(자본)을 가진 데다 중국에서 이윤이 많이 남는 물건을 구매해 되팔 수 있는 유통망을 끼고 있는 노동당 간부 계층이 시장경제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북한 당국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마냥 내버려두자니 시장을 중심으로 반정부적인 정보와 움직임이 확산될까 두렵고 강력하게 단속하자니 주민 불만이 폭발할 수도 있어서다. 실제로 큰 부를 축적한 상인들이 늘면서 이들의 입김이 세지고 보안원이 상인을 구타하는 등 무리하게 단속하면 상인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줌마 부대’가 이판사판으로 강력하게 항의해 과거처럼 무자비한 단속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 북한 주민들은 당국이 미사일을 쏘든, 핵실험을 하든 상관없으니 시장만 닫게 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북한 당국의 폐쇄적인 조치가 통하지 않는 곳, 자본주의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북한의 시장이 북한 체제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기사제공=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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