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 시계탑
-체코 문학기행
김윤자
이 순간만큼은
다 놓아버리자고 맹세한 듯이
동일한 사고와 표정으로 모여든 세계인들이
씨 가득 박힌 해바라기 꽃 덩이가 되어
구시청사 외벽에 장착된
천문 시계탑에 시선을 집중하는데
정각이 되자
꼭대기에 앉은 황금 닭이 울고
시간의 종소리에, 죽기 싫다고 고개를 흔드는
허영, 탐욕, 정복욕 조각상들
해골은 이 모든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소용없음을 알리며
시간의 줄을 잡고 춤을 춘다.
깊은 의미의 영롱한 메시지가 담긴
이 시계를 제작한 기술자는
다시는 이런 위대한 시계를 제작하지 못하도록
눈을 멀게 했다고, 그래도
높은 곳 두 개의 창문을 열고 스쳐지나가는
예수의 열두 제자는 고요한 미소로
용서와 사랑, 평온을 세상에 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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