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박물관-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어느 날 생명의 바람이이곳에 스미었으면 좋겠습니다.그래서 저 많은 조각상들이벌떡벌떡 일어나고저 많은 자수화가생생히 일어섰으면 좋겠습니다.굳어진 몸으로역사를 말하는 표정들이너무 진지하여서보는 눈시울이 젖어 듭니다.처음에는 걸음으로산 자와 죽은 자가 구별되지만섞이고 섞이어 돌다보면조각상이 사람으로사람이 조각상으로, 하나가 됩니다.네로를 만나고, 소크라테스를 만나고여러 신들의 준엄한 질책도 받고자수화 풍경 속에 들어서면진정 걸어가야 할 길이, 거기 있습니다.
바티칸 시국-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나라 안의 나라, 도시 속의 국가꽃송이 위에, 또 한송이 꽃이연못 속에, 또 하나의 연못이 박혀 사는이 찬란한 조화세상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으로수도도 바티칸이며인구 일천 명의 엄연한 한 나라다.어느 아파트 한 단지의 인구보다도작은 이곳이, 국가로 인정받는 곳이다.로마 교황이 살며통치하는 카톨릭 영토국가라기보다, 하나의 종교 위상을 높이 인정하고세계에 전파하여 평화의 상징으로존재하는 성역이다.어디까지가 국경선인지 구분되지 않는로마 도심의 동그란 나라강한 기류가 흐르는, 작지만 큰 나라다.
진실의 입-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거짓말을 한 사람이 손을 넣으면손가락이 잘린다는 입농민과 영주의 싸움을 다스리던 곳이다.영주는 농민에게 인건비를 안 주고, 줬다 하고농민은 받고도, 안 받았다 하고이런 거짓말을 다스리기 위해진실만을 말하라는, 진실의 입이다.산타마리아 성당 입구 한적한 벽면에사람 얼굴의 원형 석판이 걸렸는데이것이 바로 진실의 입이다.해신 트리톤의 얼굴을 조각한 것이며원래는 하수구 뚜껑으로손을 넣었다 빼면 하수구 냄새가 났던 돌이다.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과 그레고리 팩도 손을 넣었다 하여진실의 입은 더욱
대전차 경기장-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영화 벤허의 대전차 경기장이다. 일곱 바퀴 반을 돌던대로변에서 내려다 본 경기장은 저 아래로 보이는 낮은 지대의 직사각형 마당이다.이 장방형의 길쭉한 마당에서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해주기 위해전차 경기와 검투사의 검투가 연출되었다.이십오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거대한 건축물은 허물어진 채 흔적만 보인다.로마의 역사와 견줄 수 있는가장 오래된 유적지 중 하나다.여기까지는 수용할 수 있는 사실이다.그런데 놀라운 신비가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로마 공회당, 그 웅장한 터에서도다 폐허가 된 건물 뼈다
콜로세움-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로마 도심, 곳곳에서 보이는 대로에잘 생긴 사자 한 마리 앉아 있더라고갈기도 허물어지고, 이빨도 빠지고발톱과 뼈만 드러내며 용맹을 세우고 있더라고늙어서 동그랗게 오그라진 형상으로그래도 빗장을 채워 마지막 자존은 지키고 있더라고이렇게 전하면 너무 예민한 펜끝일까서기 칠십이 년, 네로 궁전 뜨락의 연못에유태인을 데려다가 팔년 동안 지은 원형 경기장대리석과 대리석을, 청동과 납으로 이어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화가이천여 년 가까이 지켜지고 있으니생사를 겨루는 검투사와 짐승의 울부짖음보다더 지독한 표상이다
로마 공회당-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한시저가 거기 있고양철지붕에서 화장되며 최초로 신이 되어 하늘로 날아간시저가 거기 있다.로마의 시작과 끝이, 로마의 어제와 오늘이 만나는 곳기가 막힌 유적지다.로마 이천오백 년, 찬란했던 역사의 무대도 위대하지만폐허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존하는 로마시가 더 위대하다.이것이 로마다.뼈다귀만 앙상한 포로 로마노, 공공광장상업, 정치, 종교 부흥기의 사회상을 알몸으로 전시하여오늘과 내일의 길을 찾는다.저 길로 클레오파트라와 시저가 걸어 왔고저 개선문으로 들어와 승
베네치아 광장-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통일은 길에서부터라고 말하듯잘 생긴 여섯 개의 주요 도로가 만나로마 교통의 중심지가 된 곳이지만사실은 이탈리아를 통일한임마누엘 이세를 기념하기 위해 삼십 년의 손길로 지은 숙연한 공간이다.이차 대전 때 무솔리니가 쓰던 사무실도 있고히틀러가 처음 걷던 길도 있지만역사는 다 잠들고지금은 시민의 광장이며, 축제의 장소로 화사하다.꽃도, 나무도, 뽀얀 길도흩어진 시간을 모아 고운 빛을 발하고 로터리를 돌아가는 수많은 차량 행렬은고전과 현대의 풍미를 섞어역사를 동그랗게 하나로 꿰고 있다.통일은 눈부시다
트레비 분수-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아무 말 하지 마시어요로마에 다시 오려거든 동전을 한 번만 던지고사랑을 이루려거든 동전을 두 번 던지고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려거든동전을 세 번 던지면 됩니다.전설처럼 흩뿌려 쌓여진물 속 동전들은삼십 년을 물속에서 산 포세이돈과 함께빛나는 목숨입니다.전쟁에서 돌아온 목마른 병사에게한 처녀가 샘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하여처녀의 샘이라 부르는 저 물은결코 늙지 않는 희망이며, 사랑입니다.건물이 높다 하여, 조각상이 눈부시다 하여눈을 감으시면 안 됩니다.울음처럼 진한 나신의 몸에서단단한 맥으로 굽이쳐
스페인 광장-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로마 시가지에스페인 광장이라는 명칭이아이러니컬하지만스페인과의 쌓아온 역사가 있어고유한 이름으로 남은 쾌적한 공간이다.스페인 대사관이 있어, 그렇게 부르며낭떠러지를 메워서 지은 광장인데지금은 로마인의 휴식처지만발작, 괴테, 바흐, 그리고영국 시인으로 요절한 키치 등이 활동하던곳으로, 아직도 예술의 향기가 진하다.수호천사 첨탑이 거리를 보듬고보트 모양의 분수, 꽃으로 장식한 세련된 건물들서울의 강남이다. 눈부신 번화가다.영화, 로마의 휴일 촬영지로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팩이 어디선가나타날 것 같은,
산타루치아 항구-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보는 아름다움도 크지만새로이 배우는 기쁨도 크다.나폴리 항구의 정확한 이름이나폴리 산타루치아 항구란다.사람을 실어 나르는 배보다세계 곳곳으로 실어 나르는 화물선이 더 많다.해변을 길게 깔고 앉아물건을 이동하는 거대한 기계와단단하게 포장한 상자의 행렬이 눈부시다.저 많은 화물은 무엇이며모두 어디로 가는가지중해 안온한 바닷가라서평화롭게 성장한 항구사람으로 치면 장신의 크고 넓은 면적이다.잘 생긴 항구, 멋들어진 항구잠시 지나가며 본 외형이 그렇거늘야무진 속살은 얼마나 훌륭할까역사적인 지명을 만난
나폴리 미항-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데그 무엇이 있어 미항일까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항과호주의 시드니 항, 그리고이탈리아의 나폴리 항, 이 셋이세계 삼대 미항이라는 말에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가떠오르며, 호기심 많은 나의 눈과 귀가 크게 열린다.나폴리 항구에 가까워졌을 때저 멀리서 해답을 얻었다.바다 위에 뜬 것처럼 보이는높고 긴 산의 포물선, 베수비오 화산 비경이다.화산 폭발로 삼켜버린 폼페이를감싸 안고 있는 모습이 눈물겹도록 곱다.폼페이 최후의 날은 당시의 슬픈 비극이지만현세에 이르러서는훌륭한 교훈
카프리 섬 비경-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섬의 정수리, 태양섬에 오른 순간뚝 끊어져 내린 절벽과그 아래 천길 낭떠러지 푸른 바다가죽음보다 아름답다.목숨보다 아름답다.티베리우스 황제가 부인을 새로이 바꾸려고이곳 절벽에서 본처를 밀어 죽였다는전설 같은 이야기는 증발되고남은 것은 아름다운 비경이다.푸른 나무 군락 속에 하얀 집들이 배꽃처럼 앉아모든 순수한 영혼이 모여 사는 궁전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안나 카프리와낮은 지대의 카프리, 두 마을일만 일천 명이 생을 잇는 땅, 장엄한 평화다.산정 뜨락의 강인한 목숨들깎아지른 암벽에, 섬의 보호성
카프리 섬 리프트-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무서운 줄이 아닙니다.외줄 위에서홀로 타야 하는 것이 두렵지만땅에서 발이 떨어지는 순간잠시 어지러운 유희로 간들거리다가발 아래 고요 속에서새로운 세계를 만납니다.아무 것도 묻지 말라 합니다.내밀한 통로가 열리거든목숨을 만나라 합니다.생애의 절벽이 장렬합니다.바다 위 섬, 섬 위 산, 산 위 나무정직한 조화 속에내가 있습니다.그 사이에 선명한 존재로 살아 있습니다.해발 육백 미터 산정을 오르는원시의 오름 길그 탱탱한 십오 분의 시간은가장 소중한 목숨입니다.
카프리 섬 유람선-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소렌토 도시의 끝자락도 멀어지고멀리 폼페이 베수비오 화산도 아련히 보이고작은 섬 조각에 해송도 보이고바닷물에 씻겨나간 해벽도 보이고그러다가 망망대해 가운데로 바람을 가르며고독한 뱃길을 달리는 유람선에서사람들은 행복에 젖어 있다.바다에 대한 낭만과 카프리 섬에 대한 기대로달려도, 달려도 아름다운 시간이다.나의 시선은 바다 위에 고정되고가슴은 시심에 젖는다.바람과 함께 갑판에 서서자유로이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감정들을원색으로 허락하며웃는다. 소리친다. 노래 부른다.누가 막겠는가, 이 바다의 황홀
소렌토 항구-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가난한 갯내음과 촉촉한 향수의 야자수가 흐드러진이탈리아 남부 지중해, 그 바다에서기억 저편의 선율을 건져 올리며가슴으로 노래를 부른다.깊고 푸른 애상, 뜨거운 전율로 출렁이고뚝 끊어진 절벽 아래고요히 열린 바닷길을 바라보며아름다운 사람이 돌아올 것 같은마른 회억의 배회로 행복한 시간이다.다 정지된 시간, 바다가 세월을 지운다.나는 누구인가, 나는 몇 살인가정박한 뱃전을 서성이며나는 카프리 섬으로 간다고, 다시 이곳으로 오지 않고카프리에서 나폴리 항구로 간다고그리고는
폼페이 기차-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아무 것도 모른단다.눈물도 없단다.내일만 바라보고 달린단다.슬픈 얘길랑 하지 말란다.비루한 회상을 털고이탈리아 남부 빈민 도시의희망으로 주렁주렁 매달린오렌지를 보란다.가벼운 기계, 키 작은 기계가그날의 참상을 잊고고요한 들녘을 가로지르며길고 긴 터널도 뚫고폼페이 항구를 지나소렌토역으로 달려간다.이곳 사람들은 눈감고 가지만나는 차창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폼페이 최후의 날, 그에 대한작은 해답 하나 얻을까 싶어
폼페이 기차역-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무엇을 실어 나르십니까혹시 과거의 시간은 싣지 않으십니까맨 끝에 차량 한 칸 더 달아저 참혹한 역사폼페이 최후의 날, 그 시간들을통째로 옮겨 싣고어느 곳, 깊고 깊은 적막의 계곡에다묻고 오실 수는 없습니까사람만 타라 하십니까머물수록 무거워지는 아픔이라서서둘러 타야 된다고 그리 외치십니까가슴에 박힌 소슬한 비극일랑철로에 고이 묻고아름다운 소렌토로 떠나자 하십니까
폼페이 유적지-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잠들지 못한 건물의 뼈들이 해골처럼 서서햇살을 거부하고, 바람을 외면하고주인을 찾듯, 소슬한 눈으로 바라본다.철저히 닫힌 환락의 도시였기에이천 년 전 귀족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박제되어제우스 신전, 마차 길, 쇠창살 대문, 우물창녀촌의 남자 성기, 화산재에 싸인 시체엎드려 죽은 임산부, 등 장렬하다.뜨락에는 철없는 파란 풀들이 송송 눈뜨고그날을 모르는 강아지는 편안히 누워 있고집 잃은 포도주 항아리, 술병, 토기그릇들이 창고 한가득서기 칠십 구년 팔월의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이만 명의 목숨을 묻
폼페이 최후의 날-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소설 제목인데비참한 최후의 순간을 상징하는하나의 고유한 문구가 되어버린베수비오 화산의자연재해일 뿐인데신이 노하여 형벌을 내린 사건으로부각시키고 있는모든 것이 종교적으로 해석되던그 당시의 폼페이는환락의 도시였고재물과 쾌락에 눈먼 사람들이재앙에 대한여러 차례의 경고를 되돌려 보냈으니신의 분노로 기록한불바다의 화산재가해발 육십구 미터로 쌓여새로이 형성된 해안 절벽의 도시, 폼페이얼마나 장엄한 폭발이었는지뜨겁게 읊조리고 있는
베수비오 화산-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폼페이를 불바다로 만들어 놓고언제 그랬냐는 듯이다소곳이 앉은 산봉우리가 평평한 것 빼고는보통 산과 똑 같은데이천 년 전 화산 폭발로인근 도시 폼페이를 삼킨 것에 대하여바라보기조차 두려운 저 산슬픈 도시를 위해이제는 보호산처럼 둘러 진을 치고폼페이 시민에게 사죄하듯폼페이를 찾는 이방인에게평안을 선포하듯함묵으로 눈감은 저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