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낙서김윤자최초로 발견한 것은프랑스 노드역에서 고속열차 탈리스를 타고벨기에 브뤼셀역으로 가던 중기차역 곳곳에서다.기차를 기다리는 지루함을 쏟아 놓은 것이라고예사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는데아니다. 그 이후로내가 관심의 눈으로 유럽의 건물을 보았을 때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낙서들이경고문도 없이 버젓이 상가, 주택 외벽에 산다.타국의 언어라서 판독은 어렵지만한국의 정서나, 나의 두뇌로는 분명 쓰디쓴 낙서다.그러나 유럽에서는 낙서도 하나의 예술 장르로 인정하여 수용한다는 대목에서나는 소스라치게 놀랐고, 곱게 바라보기로 했다.차츰 시야
뢰머 광장-독일 문학기행김윤자프랑크푸르트의 심장이다.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상실된 도시에현대식 건물들이 비상하며 숲을 이뤄도여기, 평정의 저울과 칼을 들고 선 정의의 여신에더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다.역사를 싣고 다니는 수레는유럽 곳곳에 광장을 낳고, 왕궁을 낳지만이곳 뢰머 광장에는 곧은 잣대의 천칭까지 낳았으니결코 가볍지 않은 빛이 서리어 있는 공간이다.시청사와 카이저 성당, 그리고역대 황제들의 연회와최초로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하여황제의 방으로 불리는 대표 건물 뢰머가아무리 우렁찬 함성이어도몇 백 년 과거의 무게를 지켜온 광
로렐라이 언덕-독일 문학기행김윤자애련한 입술로 부를 노래가 아닙니다.여린 목청으로 부를 노래는 더욱 아닙니다.라인강을 달리며로렐라이 언덕에서 소녀상을 만나며날카로운 산정 언덕에 올라서며강한 언어와 탄탄한 선율로 다시 입력됩니다.강물을 기역자로 꺾어버리는강목의 암초 앞에서신의 휘파람 소리가 미끄러져 내리는다림질한 바위 앞에서만선으로 돌아오는 어부의 배를 지켜 달라고강물이나 강바람에게 주문하는 것은폭풍에게 나뭇잎을 맡기는 일입니다.좌초당하여 난파되는 배의 운명을로렐라이 드높은 언덕에소녀에 대한 눈먼 사랑으로 전설을 심어 놓고비루한
로렐라이 소녀의 슬픈 사랑-독일 문학기행김윤자로렐라이 소녀가 살던 상고하우젠을 지나며바람처럼 흐느껴 울어야 될슬픈 사랑 이야기를 듣는다.고기잡이 떠난 남편을 기다리던 한 여인에게짙은 사랑이 배인 동네 남자가사랑의 자살을 하고그 부인과 어머니는황제에게 여인의 처형을 요청했는데황제마저 아름다운 여인에게서짙은 사랑이 배이고이곳을 떠나 언덕에 살라고 명령했을 뿐어느 날 여인의 남편이 돌아오다가언덕에 선 아내의 아리따움에배가 암초에 부딪히는 것도 모른 채사랑의 죽음은 또 이어지고로렐라이 언덕에서 소녀도 떨어져 산화되고아름다운 것이 죄라면
마르크스 고성-독일 문학기행김윤자달려도, 달려도라인강은 끝이 보이지 않고가도, 가도산줄기는 막힘이 없고강과 산의 장엄한 만남 속에서목숨을 걸고 생존해온 고성들이나름대로 이름을 받아빛을 발하고 있다.고양이를 닮은 고양이성쥐를 닮은 쥐성그 옛날 하나의 성은 하나의 국가였고성을 중심으로 영주들의 세력이 행사되고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이는데오롯한 산정에 우람하게 앉은 마르크스 고성눈부신 하늘과 마주하여세상의 경계선 다툼은 다 잊어버린 듯산 아래 현대의 문화가 꽃 핀기차선로에이고 진 나이를 던지고 있다.
라인강의 기적-독일 문학기행김윤자기적은 결코 허황된 것에서부터발원하지 않음을 배우고 간다.천연의 운명이 결정지어 준 것이라 해도그것을 관리하는 것은 인간의 손길이다.일천삼백이십 킬로미터의 긴 강십사 개국을 거쳐 흐르는 장엄한 강그 중에서 절반의 길이가독일을 거쳐 흐른다 해도라인강의 기적이 저절로 일어난 것은 아니다.라인강을 차지하면 부의 축적을 의미하고전쟁시 라인강을 막으면 어떤 족속도 통과할 수 없고보이지 않는 발가락이 맥을 이으며독일을 키웠겠지만일어선 것은 국민의 발목이다.강물에서 반사하는 햇살 한 줌도그대로 흘려버리지 않고
코블렌츠 삼각주-독일 문학기행김윤자그곳에 서면 다 보입니다.시간의 흐름도, 공간의 파괴와 생성도하나 되는 시공의 합일점도새로운 시작의 유럽을 만납니다.세계 이차 대전이 쓸고 간 도시 코블렌츠는다시 일어서 반들거리고아직도 과거를 떠나지 못하는철옹성 요새들이산줄기 곳곳에서 역사를 재현하고두 강을 하나로 묶는 합류점에서빌헬름 일세 기마 동상은조국의 통일을 우렁차게 외치고다 보입니다. 그곳에 서면독일의 어머니인 모젤강과독일의 아버지인 라인강이 만나는그곳, 삼각주에 서면
룩셈부르크 왕궁-룩셈부르크 문학기행김윤자골목을 따라 들어간 곳에서한국의 어느 빌라와 같은 건물을 만나고그것이 왕이 사는 집이라고국기가 걸려 있으면 외출 중이라는데오늘은 국기가 없어분명 왕은 지금 저 허름한 집에 거하고 있음이다.왕은 국가의 정신적 지주로 존재할 뿐실권은 그리 크지 않다 하여도작고, 검소함이 눈부시다.제주도의 한 배 반 크기인구 사십삼만 명지엔피 사만 달러, 이것이 룩셈부르크다.호화로운 울타리, 찬란한 지붕의 왕궁을연상했는데, 자막은 증발되고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자꾸 우산 속에 스며든다.작은 도심을 빼면부유한 흔적
아돌프 다리-룩셈부르크 문학기행김윤자절벽을 이고 선 다리이방인이 이곳에 와서 잠시 볼 때는휘어진 곡선 그 눈부심에, 예술이라고낭만을 노래하지만역사 저 너머 시간을 회상하는 자국민에게는나라의 목숨이 걸린 소슬한 현장이다.유럽의 강한 태풍이 쓸고 다닐 때얽히고설킨 줄다리기 사이에서작은 영토, 건너가는 길목이라는 이유로죄 없이 짓밟혀온 나라그들에게 계곡은 생존의 한계선이고성을 쌓아 올려나라 전체를 둘러 진치고 살았으니성이 얼마나 많았으면룩셈부르크, 그 국명이 작은 성일까그 한 계곡 페트루세, 아르젯트 강 위에 솟은영욕의 저 다리큰 보
룩셈부르크 헌법광장-룩셈부르크 문학기행김윤자평화로운 세상일 때는단단한 옷을 벗어도 다치지 않고광장의 문을 활짝 열어도무서운 바람이 들어오지 않고그래서 이제는 한갓 주차장이 되어버렸는가한적한 마당 한가운데황금 여신상 천사가 첨탑 위에서하늘과 땅을 수호하고 있어도아직 잠들지 못하는세계대전 전몰자, 그 위령탑 아래에는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산 자와산 자의 영혼을 뜨겁게 마시는 죽은 자두 개의 동산이눈물겨운 상면으로바라보는 이의 시선을 태우는데철사 줄로 아름답게 형태를 동여맨가로수 울타리가 모진 세월을 이긴 나이테로강인한 헌법의 눈
오줌싸개 동상-벨기에 문학기행김윤자쥘리앙, 네가 왜그 높은 벽면에 서서발가벗은 몸으로 오줌을 싸는지궁전 화단에 오줌을 싸고 지나가서경고성으로 그곳에너를 세웠다는 말도혹은, 아이를 잃은 아버지가아이를 찾기 위해너를 세웠다는 말도, 내게는 들리지 않아네 나이 사백 여 살벨기에 최고령의 시민이라고각국의 대통령이 방문할 때마다지어다 입힌 옷이 육백 벌이라고그래도 너는 여전히 알몸부끄럽지 않은, 변함없는육십 센티의 작고 다부진 청동 조각상내 눈에 너는 벨기에다.작지만 큰 나라, 유럽의 별봄을 기다리는 희망의 꽃봉오리다.
그랑 플라스-벨기에 문학기행김윤자빅토르 위고가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격찬한 말은, 그랑 플라스에 대한브뤼셀에 대한, 벨기에에 대한 정확한 보상이다.좁은 골목을 한동안 걸어 다다른 곳에서벨기에의 심장을 만났다.작은 나라, 작은 도심에자로 잰 듯한 직사각형의 거대한 광장과광장을 빈틈없이 에워싼 거대한 중세건물의 눈부심찬란한 빛으로 솟은 시청사의 첨탑과상인들의 삶을 조각한 길드 하우스실바람 하나 스미지 않은 듯벽면에 붙은 크고 작은 조각상들이아름답다는 차원을 넘어 소슬한 비경이다.일요일 아침이면 꽃시장이 되기도 하고정치의 집
유럽의 집시를 만나다-벨기에 문학기행김윤자결코 남루하지 않은 남자언어로 말하지 않고눈으로, 표정으로 말하는 사람집시의 낭만이 뚝뚝 흐르는 옷깃에서생의 자유를 공유하는 턱수염에서경계선을 넘어선 아름다움이다.파리 노드역에서 같은 의자에 앉아있던 그 남자가벨기에 브뤼셀 기차역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그가 더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집을 이고 다니는 사람보퉁이 몇 개를 양손에 들고, 등에 지고멈추어 서서 잠시 보다가계면쩍은 걸음으로 급히 달아난다.인간에 대한, 세상에 대한울안을 몰래 들여다보다가 들켜버린 시선그의 젖은 우수가사람들 곁에
플란다스의 개-벨기에 문학기행김윤자개는 영리했다.주인을 따라 나무 사이사이 돌고 도는고도의 놀이를 하고 있다.주인 여자의 손짓 하나 하나에 바람처럼 움직인다.내가 그 여자에게로 다가가개와의 만남을 요청했을 때더 먼저 눈치 챈 개는동양에서 온 이방인을따스한 눈빛과 온화한 입술로 맞아 주었다.살빛 복슬복슬 소담스런 털을 두른덩치 큰 개는내게 있어 플란다스의 개다.두 아이를 기르며, 눈물 섞어 읽어 주었던동화, 플란다스의 개그 플란다스가 벨기에의 한 지명이라는 것도이곳에 와서 알았고벨기에 왕궁 앞 시민공원에서그 충성스런 개를 뜨거운
돈키호테 동상-벨기에 문학기행김윤자오늘 벨기에에서 만난 돈키호테는소설 속 인물이 아니다.해학적 웃음을 뿌리고 다니던 가벼움은 증발되고건장한 말 위에 앉아심오한 표정으로 브뤼셀 시청사를 가리키며손을 뻗쳐 들고 있다.작가 세르반테스는 스페인 사람인데돈키호테가 어찌하여이국의 도심에 서 있는 걸까지배의 흔적이다.스페인 합스부르크가 지배의 흔적으로 남긴 유물이다.이곳의 역사적 배경이야내게 있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강점기의 내 조국 어느 아픈 한마디를 보는 것 같아오늘 만난 돈키호테는 무거운 존재다.유명세만큼이나 큰 덩치로 언덕에 서서외객
탈리스 고속열차-프랑스 문학기행김윤자붉은 의자가 유럽의 향수로이방인을 보듬어 안는다.국경선을 소리 없이 넘나드는 탈리스는지금, 프랑스 노드역에서 벨기에 브뤼셀역으로살갑게 달리고 있다.낙농업 국가의 살찐 들녘에서목가적 그리움이 뒹구는 풀의 노래를 들으며산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나는 꿈을 꾸듯 날아간다.칸마다 목적지가 달라, 칸을 바꾸어 타면어느 역에서 분리될 때다른 나라로 갈 수도 있다는 것조차산뜻한 낭만이다.내 조국의 케이티엑스 고속열차가탈리스의 속살을 본떴다는 대목은더욱 깊은 애정이다. 사랑이다.
파리 노드역-프랑스 문학기행김윤자기차가 머무는 영역과 사람이 머무는 영역의 경계선이 없습니다.한쪽 문으로는 사람이 들어오고맞은 편 문으로는 기차가 들어옵니다.기차와 사람은같은 지붕 아래에서 마주 보고 있습니다.기차 레일이 대합실 깊숙이 들어와타는 곳도 대합실, 내리는 곳도 대합실입니다.탈리스 고속열차도 들어오고통근 완행열차도 들어오고모든 기차가 사람들이 앉은 의자 가까이 다가옵니다.기차도 많고, 사람도 많은데정년 요란한 것은 사람의 움직임일 뿐기차는 참으로 얌전합니다.먼지도 없이, 소음도 없이, 경적도 없이사르르 들어왔다가, 사
세느강 유람선-프랑스 문학기행김윤자세느강 유람선에서시선에 담기는 모든 것들은사랑이다. 축복이다.지나가는 저녁 햇살 한줌에도거룩한 빛을 발하며파리의 아버지로 우뚝 선에펠탑이 그렇고물살이 갈라지는 여울목섬으로 둥지 튼 예쁜 땅에중세의 꽃으로 피어오른노틀담 성당이 그렇고세느강을 사모하던 물의 신이한 구비, 두 구비, 너울너울 흐르다가바람을 불러 일어서서곳곳에 세운 다리들이 그렇다.세느강은, 정녕 세느강이다.파리 사람들의 눈에서, 언어에서표정에서, 옷자락에서예술에 대한 짙은 그리움이 보이는 것도세느강이 키운 붉은 유산이다.
루브르 박물관-프랑스 문학기행김윤자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하얀 날개의 비상으로 공간을 빛내고나와 보시어요, 하면 줄줄이 달려 나올 것 같은역사의 실존 인물들이유년의 아이로, 혁명용사로 화포 안에 살고 있다.모나리자가 거기 있다.실제의 모나리자가 거기 있다.살아서 웃는 살빛 미소가 군중을 흡입한다.격이 높은 여인은 따로 구분되어하늘과 땅이 보이는 곳에어찌 보면 고독한 문밖 외벽에홀로이 살고 있다.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는데그녀 곁에서 경호원으로 선 감시원 아저씨는불독의 눈으로 경계선을 지키고 있다.대영 박물관이 조각의 바다라면루
달팽이 요리-프랑스 문학기행김윤자너는 행복하다.땅을 핥으며 기어 다니던 존재에서집을 이고 다니는 괴이한 속성에서벗어난 중후한 환생음식 문화의 역사 속에족보를 묻고한 나라의 전통 요리로 사랑 받는 너는 행복하다.튼튼한 각질 속에서에스카르고 소스에 싸여향기롭게 구워진 네 속살근사한 쟁반에 귀한 신분으로 나온 너를입으로 먹지 않고, 맛으로 먹지 않고가슴으로, 뇌로 먹으련다.세계인의 손에 들려 사랑 받는너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