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가는 길-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눈물겹게 깔았을 고뇌의 길을이렇게 편안히 달려도 되는 걸까한 시대의, 한 국가의 찬란한 꽃은길에서 시작되고, 길을 따라 피어나고야망은 국경을 넘어가고역사의 큰 축을 긋고, 신화를 낳고그 길을 가고 있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로마 전성시대의 화려한 질주를 따라거침없이 달리고 있다.나는 지금, 스위스에서 넘어와이탈리아 북부의 롬바르디아 평원을 지나로마로 가는 길에 진입한 것이다.이탈리아의 가장 긴 고속도로가 된 이 길이제는 활짝 열린 길한때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통과하던 도도한 길이었을 텐데스
롬바르디아 평원-이탈리아 문학기행김윤자스위스 국경선을 넘어산녘의 코모 호수를 지났을 때땅이 보인다. 농토가 보인다.초지도 없고, 빙산도 없고경계선 하나에모든 것이 증발되는 기막힌 황홀산은 다 어디로 갔는가눈은 다 어디로 갔는가지구의 그 어떤 힘이 있어 저리도 곱게다림질한 걸까알프스 산맥 예리한 설벽에서기름진 평원으로 바뀐 자막눈앞에서 눈끝까지 광활한 땅달려도, 달려도 따라오는 정열의 들녘안개도 돌아눕고, 바람도 고개 숙인지중해 반도 국가의 값진 영토보드라운 평화다. 살찐 고요다.
스위스 특식 퐁뒤김윤자우리는 오늘 스위스인이다.알프스 산맥에서 거친 호흡으로젖소를 따라, 양떼를 따라질주하다가 넘어지고, 젖통에 고인 젖을 짜고고단한 하루를 마친 충실한 목부다.그들이 먹어야 하는 기름진 식탁에서 값진 체험을 하고 있다.지글지글 끓는 기름 냄비에닭고기와 쇠고기를, 긴 포크에 생으로 꿰어 넣고 익혀무제한으로 먹는 스위스 정통 특식 퐁뒤상당히 비싼 요리인데국물도 없이, 고기만을 계속 빼어 먹어야 하는 것이오히려 우리에겐 고통인 것을그러나 우리는 지금 스위스인이다.추운 지방에서 높은 열량을 내야 살 수 있고알프스 산
빈사의 사자상-스위스 문학기행김윤자왜 하필 사자인가로마 병사들이돌로 사람을 죽일 때스위스 군사 칠백 육십 명이그것을 막다가돌아 맞아 죽었다는데그 영혼을 위로하는 동상이왜 하필 저 사자인가호수가 있어건너 갈 수 없는 곳에 앉아 있는거대한 사자상사자의 거친 상징보다사자의 고독한 내면의 상징이다.꽃은 아름답게 피었는데햇살은 따스한데비참하게 죽어간, 죄 없는 군사들이빈사의 사자로 눈물겹다.
루체른 무제크 성벽-스위스 문학기행김윤자고요한 나라에도전쟁의 상흔이 남아 소슬하다.로마 지배시 쌓은 성벽이라는데성문 높은 곳에쌍독수리가 새겨져 있어오스트리아 명가문 합스부르크가의상징이 오롯하다.사방을 다스려온 흔적이아직도 역력하게 보이는데언덕 길 아래에는유럽의 전형적인 저층 아파트가단단하게 들어 서 있다.성벽은 참으로 우람하고 높은데현대식 도심 건물은 잔잔한 향연아픈 생채기만 빼면과거와 현실의 아름다운 조화내 조국의 시린 한마디를이국에서 만나고 있다.
스위스 빙하 호수-스위스 문학기행김윤자산은 산맥을 이루고물은 호수를 이루고그래서 명품인 나라, 스위스알프스 산맥이 낳은 빙하 호수가삼백 여 개, 그 중루체른 호수는 스위스 남부 지방낮은 지대에 있어 한가득 고인 물이장엄한 물 잔치다.수많은 배가 정박해 있고도로변에는 할아범 같은 가로수가차도에는 전차와 수많은 차량들이호수를 예찬한다.화사한 날에는물빛까지 장관이라는데오늘은 비가 내려물방울이 여울지는 낭만의 호수다.얼음이 제 살점 깎아 만든 빙하 호수에는하늘과 땅의 사랑을 흡입하는뜨거운 열정이 산다.
루체른 목조 다리-스위스 문학기행김윤자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던 중스위스 영토 끝자락에서수면 위로 뜬 소중한 보물을 만났다.세계에서 가장 긴 목조 다리빙하 호수 한 켠에이백 미터의 긴 몸을 소슬하게 버티고 있다.다리 위 목조 건물 벽면에는비둘기가 집을 짓고 살고다리 아래 평화로운 물 위에는백조와 오리가 노닌다.비가 오는데사람들은 귀찮음도 아랑곳없이고전 향기가 물씬 배인 애련한 명물을거닐어 보고, 훑어보고, 만져본다.호수에 뜬 스위스의 알프스다.늙어서도 쓰러지지 않는 교교한 물 위 산맥이다.
유럽의 천국과 지옥김윤자지어낸 말이겠지만유럽을 여행하다 보면바람처럼 흐르는 말이 있다.유럽의 천국은이태리와 스위스의 정열적인 사랑이고유럽의 지옥은 영국의 날씨, 독일의 음식, 그리고프랑스 기계, 스위스 여자다.이태리는 정열적인 태양처럼스위스는 순수한 눈처럼 사랑을 하므로 천국이고영국의 날씨는 변덕스러워서독일의 음식은 맛이 없어서프랑스의 기계는 고장이 잦아서스위스 여자는 낙농업으로 손이 거칠어서 지옥이다.모두 사실이더냐고 내게 묻는다면두 가지는 거꾸로 해석하라고 말하고 싶다.스위스의 사랑이 천국이라는 것은알프스 차가운 산맥에 대한
알프스 소녀 하이디-스위스 문학기행김윤자하이디가 아름다웠던 것은따로 있었다.긴 머리에 스카프를 매고주름진 긴 원피스를 입고앞치마를 두르고, 요들송을 부르며알프스 산의 목동처럼 뛰어다닐 때꿈길 낭만으로 보았는데먼먼 천상의 여인처럼 황홀하게 다가왔는데그것은 스위스 여자의 일상이었다.젖을 짜고, 동물을 기르는 일추울 때는 젖소를 끌고 산 아래로 내려오고더울 때는 산 위로 끌고 올라가고그래서 손이 크고, 거칠고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사랑 받는 것은그의 크고, 거칠고, 옹이진 손가락 때문이었다.저 험악한 산, 알프스의 준령에하이디를 세운
회전 케이블카에서 본 알프스-스위스 문학기행김윤자햇살까지 미끄러져 내리는 영토원죄라도 탕감 받을통곡의 빙벽에예리한 칼날로 켜켜이 쌓인 시간을목울대가 베이도록 마시면서태고의 적멸로 초대하는 거룩한 산동그란 기계의 틀에 수십 명이 들어앉아소슬한 빙하 계곡을 빙그르르 돌고 돌 때깊은 속살까지 드러내는 나신의 알프스허물어진 가슴 벽에생명처럼 키우는 얼음 뼈 기둥을 바라보며누가 미물이 아니라 하겠는가누가 목숨이라 하겠는가다 버리고 가란다.차가운 두려움일랑 설벽에 사멸시키고뜨거운 오만일랑 서걱이는 풀줄기에 태우고 가란다.모든 것을 놓아버린
알프스 빙하 동굴-스위스 문학기행김윤자생명이 거하지 못하는 곳에신은 가옥을 허락하고얼음 조각상으로 목숨을 부활시킨다.알프스 티틀리스 최고단 봉우리고운 집, 아늑한 집인간의 눈으로 보면 차갑고 무섭지만그곳에 들어가는 순간빙벽을 타고 흐르는 시린 꽃빛이휘휘 돌고 돌아알프스의 요정이 된다.몇 구비를 꺾어 돌았을까이제, 세상 빛을 따라 나가라 하는데얼음을 사랑한 내 그림자빙하 동굴 문을 떠나지 못한다.
알프스 티틀리스 산정-스위스 문학기행김윤자하얀 고혹의 정수리에세상을 강하게 키우는 용기를 이고 서서만져보라고, 쥐어보라고, 뒹굴어보라고빙벽에 목숨을 매달고 사는한 줌의 눈일지라도끝없는 포용의 알프스를 닮아바람과 구름이 훑고 간 아픔을 말하지 않는다.하늘이 어루만지는해발 삼천 이십 미터, 경계선 너머의 고지눈 속 불멸의 고요돌아가면 무어라 전할까가슴이 멎도록 황홀하더라고나의 혼을 뜨겁게 흔드는 환상의 영역이라고아니, 나의 영과 육을 보석으로 제련하는신의 눈물고운 성역이더라고 전하리라고뇌를 하얗게 태운 융단을 깔아알프스 영봉은 보드
엥겔베르그의 시린 비경-스위스 문학기행김윤자시린 빛에 젖어영혼이 춤추는 행복이라 하면이해가 되실런지요조금 더 투명하게 그리라 하면알프스의 요정이밤을 접고, 은빛 소야곡으로창문을 두드립니다.여기서 더 진하게 읊으라 하면하루를 살다 가는 목숨이불과 사랑하는 황홀한 투신그 찰나의 고요가해가 떠도 잠들지 않고달이 떠도 잠들지 않고시간을 이탈하여 흐른다 하면이제 아시겠지요스위스 알프스 산맥 아래동그란 마을, 엥겔베르그의 시린 비경을
라인 폭포-스위스 문학기행김윤자돌아서 가야지 하면하얀 평화가 배꽃처럼 나부끼고이제는 정말 돌아서야지 하면하나로 융화되는 함성이 푸른 메아리로 울리고내가 네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너의 자태가 아름답다거나폭이 장대하여 웅혼이 깃들어서가 아니고알프스 산맥에서 탄생하여라인강의 첫줄기라는 것도 아니고그래, 그런 객관적인 사유는나의 눈으로 느끼는 찬란한 감탄이고가슴 속에서 솟구치는 붉은 갈망을쉬이 접지 못함이다.나는 지금 스위스 샤프하우젠에서전망대를 오르내리며 바라보는데저 건너는 독일의 영토폭포의 낙차까지는 스위스령떨어져 흐르는 물줄기부
국경선의 비-스위스 문학기행김윤자유럽 들녘의 비는 아름답다.하나로 통합된 대륙에하나의 비로 뭉쳐 내리는 모습이 그렇다.유로 버스를 타고 국경선을 넘나들어도고속 열차를 타고 국경선을 넘나들어도경계선이 없는 들녘이다.신고 절차만 거치면경계선 너머 이웃 나라로 이사도 가능하다.스위스가 EU국이 아니라 하여독일령에서 스위스령으로 넘는 마디에서출입국 사무실에 신고하기 위해머무르는 순간도 행복하다.빗줄기가 굵어져 차창을 가린다.울음처럼 슬픈 비내 조국의 국경선에서라면 그리 해석될 비가이곳에서는 가벼운 낭만국경선에 대한 축복의 비, 평화의
티티제 마을-독일 문학기행김윤자아직 스위스가 아닌, 독일 남부지방인데알프스 산맥은 이미고고한 기류로 마을을 감싸 안으며숨 쉬는 모든 것들에게찬란한 고독으로 물들이고 있다.해발 팔백 미터 고지의 땅침엽수림이 쏟아내는 푸른 바람소리를 마시며빙하 호수가 품어내는 옥빛 무상에 젖어눈과 얼음이 쌓이는 무대에서하얀 애상의 조각 인형처럼 생을 전시하는 사람들조랑말을 타고 마을을 지나가기도 하고사자 같기고 하고, 늑대 같기도 한덩치 큰 개를 끌고 식당에 들어오기도 하고, 뜨거운 정경에 놀라다가내가 도시의 옷을 벗고원시의 눈과, 원시의 귀를 열
하이델베르크 고성-독일 문학기행김윤자붉은 기와지붕 꽃물결 속에페르시아 왕과 공주가 거닐던 정원에 들어서며나는 오늘 하루 공주가 되고넥카강을 넘어가는 낭만의 옛 다리칼테오도르 다리를 바라보며역사의 시간을 유영하는날개 큰 새가 되어 훨훨 날다가문인과 철학자의 열정을 보듬은 산언덕고운 마을, 철학자의 길에서괴테를 만나고, 하이네를 만나고고딕, 바로크, 르네상스의 성스러운 조화를 공으로 한눈에 담으며일곱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탄생시킨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정에서고전의 향기를 마시며탄탄한 내가 되어 나올 때살기 싫은 생각이 들거든 하이델베르
아우토반 고속도로-독일 문학기행김윤자낡고 허물어지는 것은사람에 적용되는 것만은 아니다.무제한 속력 강철 도로에도아픈 생채기는 있다.한 달 여름휴가를 위해일 년을 열심히 일하는 독일인의레저 문화가 고스란히 깔린 길이다.자국이 아니라경계선 너머 먼 나라로 떠나는유럽의 여행길은그렇게 무제한의 속력을 허용해 왔다.세월이 흐르면서도로 곳곳은 아픈 흔적을 드러내고사람들은 이제 스스로자유의 속력에서, 제한의 속력으로바꿔 달리고 있다.아픈 도로를 고치지 않는 것도고치지 않는 도로를 말없이 달리는 것도아름다운 순응이다.
괴테 생가-독일 문학기행김윤자프랑크푸르트에서괴테가 탄생한 교회를 만나고괴테 생가를 만났으니두 개의 큰 보물을 얻은 것이다.고전주의 벽을 허물고적나라하게 개인주의 소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함으로세계를 흔들었던 문학의 영웅역시, 그가 살던 집은여린 땅이 아니라상류 계급의 활기찬 거리에 있다.소설은 슬프지만황실 법무관이었던 아버지와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는그를 결코 가벼이 기르지 않았다.탄생하여 스물여섯 살까지 살았던 집에서반듯한 괴테의 거리에서다부진 유년의 괴테를 만난 것은문학의 곧은 뿌리 하나 얻은 축복이다.
마인강변 바울 교회-독일 문학기행김윤자라인강의 발원이며프랑크푸르트의 살찐 도심을촉촉이 적시는 마인강변에큰 눈과 큰 귀가 아니면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작은 교회 하나한낮의 정오 종소리가 울릴 때대문호 괴테가성스러운 울음으로 시초의 눈을 뜬 곳뢰머 광장에 왔다가역사박물관 사잇길을 따라 나와한강을 마주하듯마인강과 마주 섰을 때영롱한 첨탑의 평화 속에서문학의 님을 만났으니 넘치는 축복이다.돌아서 가야 하는데내 시선은 강보에 싸인 괴테의 곁을떠나지 못하고 있으니붉은 사랑이다. 시린 이별이다.